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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 애국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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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김우종[1]
출생
사망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충청남도 홍성군 출신으로, 백야 김좌진 장군의 친족이다.

2. 생애[편집]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 운동에 동참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으며, 같은 해 4월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기관인 임시의정원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까지 약 7년간 의정원법 통과를 비롯한 임시정부 기본법 체제 수립에 기여하였고, 주요 부처의 위원 인선 작업에도 참여하였다.1924년 1월에는 임시정부 후원 단체인 대한청년동맹회의 후보감찰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군벌 내전으로 상하이 일대가 혼란해지자, 프랑스 조계지에 있던 임시정부와 요인들을 수호하기 위해 의경대를 조직하였다. 이를 통해 프랑스 당국의 조계지 경비를 지원하며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데 앞장섰다. 이후 김원봉이 주도하는 의열단에 투신하여 간부로 활동했다. 1925년 8월에는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한인 학생회를 조직하고 조사부 위원을 맡아, 새로 이주해 온 학생들의 정착을 도우며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이러한 정력적인 활동으로 인해 일제 경찰의 집중 감시 및 체포 대상이 되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