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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근대3. 근현대
3.1. 포르투갈령 기니
3.1.1. 기니비사우 독립전쟁
3.2. 기니비사우 공화국

1. 개요[편집]

기니비사우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전근대[편집]

3. 근현대[편집]

3.1. 포르투갈령 기니[편집]

대항해시대 시대에 기니비사우 해안에 드나들기 시작한 포르투갈인들은 1588년부터 포르투갈령 기니라는 이름의 식민지를 형성했다.

포르투갈령 기니는 볼라마(Bolama) 섬에 위치한 동명의 도시 볼라마를 수도로 삼았다가 1942년에 아프리카 대륙의 비사우(Bissau)로 천도했다.

3.1.1. 기니비사우 독립전쟁[편집]

1956년 포르투갈령 기니의 독립운동가 아밀카르 카브랄은 이웃한 포르투갈령 카보베르데의 독립운동가들과 연대하고 소련 등 동구권의 지원을 받아 기니 카보베르데 독립 아프리카당(PAIGC)이라는 사회주의 정당을 창당했다.

PAIGC가 1963년에 무장봉기를 감행하면서 기니비사우 독립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다른 포르투갈령 식민지인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 포르투갈군이 인접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정권과 협력하여 흑인 독립군을 몰아붙인 것과 달리, 포르투갈령 기니는 남아공과 멀리 떨어져서 남아공 백인 정권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었기에 PAIGC가 포르투갈군을 상대로 우세를 점할 수 있었고, 1972년에 이르러선 PAIGC는 포르투갈령 기니 면적의 2/3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1973년에 아밀카르 카브랄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터졌으나 PAIGC는 그의 동생인 루이스 카브랄을 새로운 구심점으로 삼아 결속력을 유지했고, 1974년 포르투갈 본토에서 식민지 전쟁에 반대하는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카네이션 혁명이 발발하여 식민지에 집착하던 포르투갈 제2공화국(이스타두 노부) 정권이 무너지자 포르투갈령 기니를 비롯한 식민지들의 독립은 기정사실화되었다.

3.2. 기니비사우 공화국[편집]

1975년 포르투갈령 기니는 정식으로 독립을 승인받았고, 수도 비사우의 이름을 따서 기니비사우 공화국을 선포했다.

독립전쟁을 주도한 기니 카보베르데 독립 아프리카당(PAIGC)는 일당독재 정권을 수립하고 루이스 카브랄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루이스 카브랄은 같은 PAIGC 소속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한 카보베르데와의 통일을 시도했으나, 1980년에 카브랄보다 강경한 사회주의자인 주앙 베르나르두 비에이라가 쿠데타를 일으켜 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PAIGC의 카보베르데 지부가 카보베르데 독립 아프리카당(PAICV)로 떨어져나가며 양국의 통일은 무산되었다.

비에이라는 19년 동안 장기집권했으나 집권 말기에는 내전에 시달리다가 1999년에 하야했고, 이때 PAIGC의 일당제도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