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見 | 利 | 忘 | 義 |
볼 견 | 이익 리 | 잊을 망 | 의로울 의 |
이익을 보면 의리를 저버린다는 뜻의 한자성어로서 《장자》에서 유래했다. '눈 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린 모습'을 가리킨다.
2. 유래[편집]
莊周遊於雕陵之樊覩一異鵲自南方來者翼廣七尺目大運寸感周之顙而集於栗林莊周曰此何鳥哉 翼殷不逝目大不覩蹇裳躩步執彈而留之覩一蟬方得美蔭而忘其身螳蜋執翳而搏之見得而忘其形 異鵲從而利之見利而忘其眞莊周怵然曰噫物固相累二類相召也捐彈而反走虞人逐而誶之莊周反入三日不庭藺且從而問之夫子何爲頃間甚不庭乎莊周曰吾守形而忘身觀於濁水而迷於淸淵且吾聞諸夫子曰入其俗從其令今吾遊於雕陵而忘吾身異鵲感吾顙遊於栗林而忘眞栗林虞人以吾爲戮 吾所以不庭也
장주莊周가 조릉雕陵의 울타리 안에서 산보하며 노닐 적에 남방에서 온 기이한 까치 한 마리를 보았는데, 날개 너비가 7척이고 눈의 크기는 직경이 1촌이었는데 장주의 이마를 스쳐 지나가서는 밤나무 숲에 머물렀다. 장주가 말했다.
“이 새는 어떤 새인가. 날개는 큰데도 제대로 날지 못하고, 눈은 큰데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구나.”
이렇게 말하고는 아랫도리를 걷어 올리고 살금살금 걸어가서 새총을 잡고 당겨 새를 잡으려 머물러 있다가, 매미 한 마리가 막 시원한 나무 그늘을 얻어 자기 몸을 잊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매미 뒤에는 사마귀가 도끼모양의 발을 들어 올려, 매미를 잡는다는 이득만 생각하고 자기 몸을 잊고 있었다. 이상한 까치는 바로 그 뒤에서 사마귀를 잡는다는 이익만 생각하고 자기 몸을 잊고 있었다. 장주는 깜짝 놀라
“아! 물物이란 본시 이처럼 서로 해를 끼치는 관계로구나. 이욕利欲에 빠진 두 가지 다른 종류는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구나.”
하고는 새총을 버리고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데 산지기가 쫓아와 장주를 호되게 꾸짖었다. 장주가 돌아와 사흘 동안 기분 나빠했다. 제자 인저藺且가 찾아가 물었다.
“선생께서는 요즈음 무엇 때문에 오랫동안 기분 나빠하십니까?”
장주가 말했다.
“나는 바깥의 형체에 정신을 빼앗겨 자신을 잊어버리고 탁한 물만 보다가 맑은 연못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우리 선생님에게서 ‘세속에 들어가서는 세속을 따라야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나는 「세속의 금법禁法을 어기고」 조릉 울타리 안에 들어가 노닐다가 「막 그늘을 차지하고 자신을 잊어버린 매미처럼」 자신을 잊어버렸는데 마침 괴이한 까치가 내 이마를 스치고 가기에 어느새 밤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 노닐다가 나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고 있었는데, 산지기가 나를 밤을 훔친 범죄자로 처벌해야 한다고 꾸짖었기 때문에 내가 기분 나빠하는 것이다.”
장자가 조릉을 거닐다가 특이한 까치를 쫓아 밤나무 숲에 이르러 새를 잡으려 했다.[1] 새가 움직임이 없음을 이상하게 여긴 장자가 자세히 보니 까치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고,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으며, 매미는 시원한 그늘을 취하고 있었다. 까치와 사마귀, 매미는 모두 눈앞의 이익에 마음이 빼앗겨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모르고 있던 것이다. 장자는 이를 보고 만물은 이런 것이라 깨달았지만, 그를 밤서리꾼으로 오인한 산지기에게 잡혀 질책을 들었다. 자신의 행동도 이익에 눈이 멀었던 금수禽獸들과 다르지 않았음을 인지한 장자는 사흘 동안 괴로워하다 제자에게 흉금胸襟을 털어 놓았다.
3. 여담[편집]
- 장자가 새를 사냥할 때 탄환을 준비했다는 원문을 통해 새총의 일종인 탄궁을 소지했을 것으로 추정한다.[5]
- 사마귀의 행태를 나타내는 「執翳而搏之」에 대한 해석이 논란이 되었다. 위진시대 진나라의 학자 사마표司馬彪는 翳(깃털 예)를 '풀을 들어 스스로 가린 것'이라고 해석하여 주류 견해가 되었지만, 북송시대 학자 진경원陳景元은 【장자궐오莊子闕誤】에서 '도끼를 말함이다. 사마귀가 도끼를 잡고 있는 것이 마치 덮개로 스스로를 가리는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했으며, 현대 중국의 문헌학자 가오행高亨(1900~1986)은 '翳는 戉(도끼 월)의 가차자假借字이며 설문해자說文解字에 斧(도끼 부)라 하였으므로, 사마귀의 앞 발에 도끼가 있음을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 인저藺且를 사람 이름으로 보는 것은 사마표의 해석에 기반한다.
- 「吾聞諸夫子」에서 장자의 스승을 의미하는 '夫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당나라 학자 성현영成玄英은 노자老子를, 북송의 진경원은 성현영이 장자의 스승이라 주장한 장상공자長桑公子을 의미한다고 했다.
- 유래에 등장하는 동물을 인용하여 「당랑포선螳螂捕蟬 황작재후黃雀在後」라고도 일컫는다. '당랑포선'으로 줄여서 표현하기도 한다. 원문에는 특이한 까치異鵲로 기록되어 있는 까닭에 새를 황작이라 표현한 것은 【설원】 등 다른 출전의 사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1] 조릉은 언덕의 지명으로서 밤나무 숲은 조릉 안에 있다.[2] 說苑 卷九 正諫 「吳王欲伐荊告其左右曰敢有諫者死舍人有少孺子者欲諫不敢則懷丸操彈遊於後園露沾其衣如是者三旦吳王曰子來何苦沾衣如此對曰園中有樹其上有蟬蟬高居悲鳴飮露不知螳螂在其後也螳螂委身曲附欲取蟬而不知黃雀在其傍也黃雀延頸欲啄螳螂而不知彈丸在其下也此三者皆務欲得其前利而不顧其後之有患也吳王曰善哉乃罷其兵」#[3] 왕을 깨우친 측근에 대해서 전국책戰國策에서는 장신莊申으로,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손숙오孫叔敖로 기록되어 있다.[4] 황작黃雀은 꾀꼬리 또는 참새를 뜻한다.[5] 莊子 山木篇 「執彈而留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