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r8 vs r9
......
33
== 개요 ==
44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기점으로 하여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
55
6
[[중세]] 이래 수백년간 유지된 [[프랑스 왕국]]의 구체제([[앙시앵 레짐]])을 붕괴시키고 프랑스 제1공화국을 수립했으며, [[유럽]] 각국에 [[공화주의]], [[자유주의]], 내셔널리즘 등을 전파하여 프랑스 국내 정치는 물론이고 세계사적으로도 중대한 파장을 야기한 사건이었다.
6
[[중세]] 이래 수백년간 유지된 [[프랑스 왕국]]의 구체제([[앙시앵 레짐]])을 붕괴시키고 [[프랑스 제1공화국]]을 수립했으며, [[유럽]] 각국에 [[공화주의]], [[자유주의]], 내셔널리즘 등을 전파하여 프랑스 국내 정치는 물론이고 세계사적으로도 중대한 파장을 야기한 사건이었다.
77
== 배경 ==
88
=== [[앙시앵 레짐]]의 모순 ===
99
=== [[프랑스 왕국]]의 재정난과 중과세 ===
......
4646
=== 1792년 8월 10일 봉기와 공화정 수립 ===
4747
혁명 전쟁 시작 이후에도 입법의회는 왕정 폐지와 공화정 전환을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상태였으나, 분노한 파리 하층민(상퀼로트)들이 1792년 8월 10일 일제히 봉기하자 입법의회는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왕권을 공식적으로 정지시키고 국민공회라는 새로운 의회를 구성했다.
4848
49
그리고 국민공회에 의해 1791년 프랑스 헌법이 폐지되고 [[공화정]]을 규정한 1792년 프랑스 헌법이 제정되면서 [[프랑스 왕국]]은 마침내 멸망하고 '''프랑스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49
그리고 국민공회에 의해 1791년 프랑스 헌법이 폐지되고 [[프랑스 공화국|공화정]]을 규정한 1792년 프랑스 헌법이 제정되면서 [[프랑스 왕국]]은 마침내 멸망하고 '''[[프랑스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5050
=== 1793년 5월 31일 봉기 ===
51
제1공화국 초기 국민공회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왕정 폐지에는 찬성하나 루이 16세 개인에게는 동정적인 온건 공화주의 세력인 지롱드파[* 혁명이 진행되던 당대에 사용된 명칭은 아니고 1847에 '지롱드당의 역사'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붙은 이름이다. 이는 해당 정파의 주요 인물들이 지롱드 지방 출신이었던 데서 비롯되었다.]였다.
51
[[프랑스 제1공화국]] 초기 국민공회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왕정 폐지에는 찬성하나 루이 16세 개인에게는 동정적인 온건 공화주의 세력인 지롱드파[* 혁명이 진행되던 당대에 사용된 명칭은 아니고 1847에 '지롱드당의 역사'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붙은 이름이다. 이는 해당 정파의 주요 인물들이 지롱드 지방 출신이었던 데서 비롯되었다.]였다.
5252
5353
그러나 강경 공화파인 자코뱅(몽테뉴파)[* 본래 자코뱅은 강경 공화파인 몽테뉴파는 물론이고 온건 공화파(지롱드파)와 입헌군주파(푀양파)까지 포괄하는 조직이었으나, 이 무렵에는 사실상 몽테뉴파와 동일시되었다. 한편 몽테뉴라는 이름은 이들이 국민의회의 높은뒷좌석에 앉아서 산 위에 올라간 것 같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산악파'로 번역되기도 한다.]는 루이 16세를 반혁명 혐의로 처형해야 한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1793년 1월 루이 16세는 처형되었다.
5454
......
6767
=== 총재정부 ===
6868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집권한 이른바 '테르미도르파'는 신헌법 제정에 착수하여 1795년에 총재정부를 구성했다.
6969
70
그러나 총재정부는 5명의 총재가 권력을 나눠가지는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한 탓에 대내외적으로 혼란한 프랑스 정국을 안정시키는데 한계가 있었고, 결국 1799년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로 무너졌다.
70
그러나 총재정부는 5명의 총재가 권력을 나눠가지는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한 탓에 대내외적으로 혼란한 [[프랑스 제1공화국|프랑스]] 정국을 안정시키는데 한계가 있었고, 결국 1799년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로 무너졌다.
7171
=== 통령정부와 제1제국 ===
7272
1799년 브뤼메르 18일 쿠데타 계획을 처음 입안한 인물은 1789년 국민의회 시절부터 활동한 성직자 출신 거물 정치인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였고, 군을 동원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단지 행동대장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는 정치에 문외한일 거라는 정치인들의 예상을 뒤엎고 권력을 독점하는데 성공했다.
7373
74
그리고 1802년에 이르러 나폴레옹은 스스로 종신 통령이 되어 사실상 [[군주]]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고, 1804년에는 공식적으로 [[교황]]이 집전하는[* [[교황령]] [[로마]]에서 교황을 납치(...)하여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까지 끌고 왔다.] [[황제]] [[대관식]]까지 치르면서 제1공화국을 붕괴시키고 '''프랑스 제1제국'''을 세웠다.
74
그리고 1802년에 이르러 나폴레옹은 스스로 종신 통령이 되어 사실상 [[군주]]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고, 1804년에는 공식적으로 [[교황]]이 집전하는[* [[교황령]] [[로마]]에서 교황을 납치(...)하여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까지 끌고 왔다.] [[황제]] [[대관식]]까지 치르면서 [[프랑스 제1공화국]]을 붕괴시키고 '''프랑스 제1제국'''을 세웠다.
7575
76
다만 나폴레옹은 황제로 즉위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소유한 봉건적 황제가 아닌 [[민중군주제|프랑스 국민을 대표하는 황제]], 즉 '[[프랑스인의 황제]]'를 칭했고 [[로마 공화정]]이 사실상의 [[로마 제국|제정]]인 [[원수정]]으로 이행한 전가 있다는 점을 들어 혁명 이전 군주정으로의 회귀가 아닌 [[국가원수]]가 황제인 공화정을 표방했으며, 혁명의 상징인 삼색기를 계속 국기로 사용했다.
76
다만 나폴레옹은 황제로 즉위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소유한 봉건적 황제가 아닌 [[민중군주제|프랑스 국민을 대표하는 황제]], 즉 '[[프랑스인의 황제]]'를 칭했고 [[로마 공화정]]이 사실상의 [[로마 제국|제정]]인 [[원수정]]으로 이행한 전가 있다는 점을 들어 혁명 이전 군주정으로의 회귀가 아닌 [[국가원수]]가 황제인 공화정을 표방했으며, 혁명의 상징인 삼색기를 계속 국기로 사용했다.
7777
7878
이와 같이 명목상으로나마 혁명의 계승을 주장하는 정권의 [[프랑스]] 통치는 1814년 나폴레옹의 1차 몰락과 1815년 백일천하를 거쳐 혁명 이전의 부르봉 왕조가 돌아와 [[부르봉 왕정복고|복고왕정]]이 수립되면서 완전히 종식되었다.
7979
== 관련 문서 ==
8080
* [[프랑스/역사]]
81
* [[프랑스 제1공화국]]
8182
*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