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r5 vs r6
......
3232
3333
제헌국민의회는 헌법 제정에 앞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채택했는데 이는 [[유럽]] 대륙 최초의 인권 선언이었다.
3434
=== 부녀자들의 베르사유 행진 ===
35
인권 선언 이후에도 프랑스의 경제난은 여전했는데 이를 참지 못한 파리 민들이 국왕 일가가 머물던 파리 외곽의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35
인권 선언 이후에도 프랑스의 경제난은 여전했는데 이를 참지 못한 파리 하층(상퀼로트)들이 국왕 일가가 머물던 파리 외곽의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3636
3737
시위대는 기혼 여성들이 선봉에 서고 남편들은 뒤에서 거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스티유 습격 못지 않게 과격한 분위기로 흘러가 시위대가 왕궁에 난입하여 근위병들을 살해하는 유혈사태로 번졌고, 결국 이에 굴복한 루이 16세는 파리 시내의 튈르리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38
=== 1791년 헌법과 바렌 사건 ===
38
=== 1791년 헌법과 입헌 왕국 ===
39
1791년 프랑스 헌법이 제정되면서 [[프랑스 왕국]]의 공식 국호는 '''프랑스인의 왕국'''[* 훗날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도 같은 국호를 사용했다.]으로 변경되고, 루이 16세 역시 [[민중군주제|프랑스 시민을 대표하는 왕]]을 뜻하는 '[[프랑스인의 왕]]'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40
41
또한 헌법 제정이라는 임무를 완수한 제헌국민의회는 해산되고 입법의회라는 새로운 의회가 구성되었다.
42
=== 바렌 사건 혁명 전쟁의 시작 ===
43
그러나 순순히 혁명 세력의 의도대로 따를 생각이 없었던 루이 16세는 일가족과 함께 아직 왕당파 부대가 남아있던 국경지대로의 탈출을 시도했는데, 해당 부대와의 접선 장소를 불과 몇 km 남겨두지 않은 바렌이라는 지역에서 붙잡혀 파리로 돌아왔고, 모든 실권을 입법의회에 빼앗긴 상태로 연명하게 되었다.
44
45
이와 같은 사건은 아직 절대왕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 등 주변국들을 극도로 자극했고, 1792년 4월에 이르러 프랑스와 주변국들 간의 혁명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3946
=== 1792년 8월 10일 봉기와 공화정 수립 ===
47
혁명 전쟁 시작 이후에도 입법의회는 왕정 폐지와 공화정 전환을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상태였으나, 분노한 파리 하층민(상퀼로트)들이 1792년 8월 10일 일제히 봉기하자 입법의회는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왕권을 공식적으로 정지시키고 국민공회라는 새로운 의회를 구성했다.
48
49
그리고 국민공회에 의해 1791년 프랑스 헌법이 폐지되고 [[공화정]]을 규정한 1792년 프랑스 헌법이 제정되면서 [[프랑스 왕국]]은 마침내 멸망하고 '''프랑스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4050
=== 1793년 5월 31일 봉기 ===
4151
=== 자코뱅의 공포 정치 ===
4252
=== 테르미도르 반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