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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집단창작]][[분류:가상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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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집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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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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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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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신라가 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면 어떻게 됐을지에 대해 다루는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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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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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왕의 삼국 통일과 이후의 영토 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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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의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고구려의 영토가 넓어진 이후 고구려의 장수왕은 적극적인 남진 정책을 통해 백제, 신라, 가야를 차례대로 멸망시켰다. 이로써 고구려는 삼국 통일을 완성했고, 우산과 탐라를 속국으로 삼았다. 그리고 고구려는 국명을 고려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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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고려의 문자명왕은 북부여의 항복을 받고 북부여를 합병했다. 영양왕 즉위 이후에는 말갈족을 조공 세력으로 삼아 동쪽으로 영향력을 넓혔으며 수나라의 공격을 막았다. 이후 고려는 당나라의 침입도 막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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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방 민족과의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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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이후 고려는 당나라, 일본, 말갈족 세력, 동남아시아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통해 경제가 발전했다. 당나라 멸망 후 오대십국시대에 고려는 여러 전쟁에 개입하여 이익을 얻었으며 요나라의 침입을 막는 데에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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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려는 금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큰 피해를 입었다. 금나라 또한 고려를 무리하게 공격하느라 피해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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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이 영토를 매우 빠르게 넓히자 고려와 금나라는 동맹을 맺고 몽골에 맞섰다. 하지만 몽골은 너무 강했기에 금나라는 멸망했고 고려는 겨우 몽골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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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아시아, 유럽과의 교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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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과의 전쟁 중 고려는 화약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이는 고려의 과학 발달에 영향을 줬다. 원나라 멸망 후 고려는 명나라와 대등한 관계로 수교했으며 항해술의 발달로 서아시아와 교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려에 유럽과 아프리카의 존재가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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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유럽, 아프리카와 교류하기 위해 항해술을 계속해서 발달시켰다. 그렇게 고려는 유럽, 아프리카와도 교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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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과의 전쟁과 근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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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륙 진출을 원했고 고려를 침공했으나 고려의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사망했고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가 수립된 후 고려와 재수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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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고려는 과학 기술을 더욱 발전시켰고 제국주의화되었으며 동남아시아와 오세아아의 일부를 유럽의 수탈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식민지로 만었다. 그 과정에서 고려와 명나라의 관계가 악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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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명나라는 강한 중화사상으로 유럽 세력을 배척하고 있었고, 유럽의 열강들은 명나라에 개항을 요구하다가 영국은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가 북만주를 병합하려 하자 명나라는 고려의 과한 팽창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고려를 침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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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명나라의 침공을 막는 데 성공하고 산둥 반도를 병합했다. 하지만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많은 예산을 소모해서 백성들의 삶이 나빠졌다. 결국 백성들은 봉기를 일으켰고 고려는 고려 혁명을 통해 공화국이 되었다. 이후 고려는 국력을 회복했고 다시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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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일동맹과 고일연합-러시아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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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던 영국은 고려 혁명 이후 다시 강해지던 고려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화가 이루어진 일본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를 막으려고 했다. 결국 고영일동맹이 결되었고, 명나라에 대한 패권을 두고 고려, 일본의 연합과 러시아 간의 전쟁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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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일연합-러시아 전쟁은 고일연합의 승리로 끝났고, 명나라에 대한 고영일 삼국의 간섭은 심해졌다. 그렇게 명나라는 몰락했고 전국 각지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그리고 의화단 운동 이후 명나라 북동부는 고려의 영토가 됐고 명나라 남동부는 일본의 영토가 됐다. 마침내 명나라는 멸망했고 중화민국이 건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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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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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세계 대전은 전 세계로 확산됐지만 고려, 일본, 중화민국은 중립을 유지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고려는 유럽, 미국 등과 교류며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했다. 식민지가 적었던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등장했다. 중화민국은 고려와 일본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을 몰아내는 운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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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은 추축국이 되어 고려와 중화민국을 침공했다. 이에 고려와 중화민국은 고중동맹을 맺고 일본에 대항했다.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은 고려, 중화민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고려는 중화민국에게 명나라로부터 빼앗은 땅을 반환했고, 일본은 남북으로 분단됐다. 중화민국은 국공내전에 의해 타이완 섬과 주변 지역을 제외한 모든 영토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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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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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본과 북일본은 일본 전쟁으로 초토화됐다. 반면, 고려와 대만(중화민국)은 이를 기회로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다. 고려는 미국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며 소련과 중국을 견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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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냉전 후반부터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여 21세기에 UN 회원국 중 경제력 2위의 국가가 됐다. UN 회원국 중 경제력 1위의 국가는 미국, 3위의 국가는 고려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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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냉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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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이 시작된 상황에서, 중국은 친미 국가인 고려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은 고려를 지지하면서 고려를 지원했고,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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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붕괴된 후, 러시아 연방으로 통합되지 않고 수십개의 군벌 국가들로 쪼개졌는데, 중국이 작은 군벌 국가들을 침공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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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의 러시아 내전 개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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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을 통일한 '극동 혁명정부' 라고 불리는 공산주의 정권이 자본주의의 마수에서 해방시키자는 명분으로 고려를 침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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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극동 혁명정부는 중국과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극동 혁명정부는 항복하고. 고려는 극동지역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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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은, 이미 많은 땅을 점령하고 있었고, 더 영토를 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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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고려는 중국의 러시아 정복을 막기 위해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있는 군벌과 동맹을 맺고, 주변 군벌국가를 침공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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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국과 국경을 닿게 되고, 국경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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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냉전의 종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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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당선된 고려의 대통령은 평화 정책을 펼쳐 중국과 국경 분쟁을 줄이고, 중국과 화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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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경제적 협력을 통해 미국에는 미치지 못 하지만, 더욱 경제력이 올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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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미국도 중국에 가하는 경제 제재를 풀게되고, 고 미 중 정산회담을 더욱 사이는 돈독해지고, 마지막에 "신냉전은 끝났다" 라며 신냉전은 공식적으로 종결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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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들아 도대체 하는거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