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19 vs r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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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 149 | 한편, 몇몇 세도 가문에 권력이 집중되자 중앙 정치에서 소외된 양반들은 관직에 등용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향촌에서 겨우 위세를 유지하는 향반이 되거나 아예 권력을 잃어 농민과 같은 생활을 하는 장반이 되었다. 이들은 몰락하여 반란을 꾀하거나 농민 봉기의 지도자가 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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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 151 | 세도 정치 시기에는 정치 세력 사이의 경쟁 구도는 물론, 정책 비판 기능 역시 마비되어 세도 가문을 견제할 집단이 없었다. 세도 가문들은 서로 혈연관계를 맺으며 정국을 주도하였고, 이로 인해 왕권은 미약해지고 국가 기강은 점차 해이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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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 이러한 정치 기강의 문란은 특히 과거제 운영과 관직 임명 과정에서 크게 나타났다. 세도 가문과 결탁하지 않으면 아무리 학문이 뛰어나도 과거에 급제할 수 없었고, 과거에 급제하였더라도 새도 가문에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높은 관직에 진출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관직을 뇌물로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성행하는 등 각종 비리가 만연하였다. | |
| 152 | 154 | ==== 고종의 즉위 ==== |
| 153 | 155 | 이후 친정을 맡게 된 고종은 서양열강의 위협과 일본의 위협에서 메우 좋지않은 상황이었다 1871년 병인양요가 있었으나 조선은 무시했다 그리고 대원군이 너무 오랬동안 실권을 쥐어서 명성황후와 고종이 몰아냈다. 1875년 일본이 조선에 침략해서 조선은 결국 열강들과 대적하는걸 포기하고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채결한다. 1884년 갑신정변과 1894년 동학농민 운동도 외부의 위협과 조선왕조의 무능에서 일어난것이다. 그래도 노력은 했는데 1894년 갑오개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건 근본적인 개혁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이기고 1895년 명성황후 시해, 1904년 러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일본에 잠식되고 있었다.1896년 연호를 독자 연호인 건양으로 변경했다. |
| 154 | 156 | === [[대한제국]]과 멸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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