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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 122 | 또한, [[영조(조선)|영조]]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자 신문고를 부활시키고, 청계천을 준설하였다. 뿐만 아니라 법전인 속대전을 편찬하여 법령과 제도를 정비하고, 우리나라 역대 문물을 정리한 동국문헌비고 등을 편찬하여 문물제도를 정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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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 [[영조(조선)|영조]]의 탕평정치로 인해 왕권은 크게 강화되었지만, 이는 붕당의 다툼을 억누른 것에 불과하였다. 사실상 영조는 노론에 의존하는 정치를 하였고, [[국왕]]과 혼인 관계로 이어진 측근 세력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척신 정치의 패단이 발생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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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 126 | 23대왕 순조대에는 김조순 등을 필두로한 세도정치가 성행한다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이상황을 타계하려 했으나 급사해서 이세도는 헌종,철종까지 60여년을 이어 온다. 이어 고종이 1863년 즉위한다 이때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그동안 폐단이 되었던 서원,환곡등을 10년 만에 개혁한다. 그러나 서양열강이 강화를 위해 1863년 신미양요,1871년 병인양요가 있었으나 조선은 무시했다 그리고 대원군이 너무 오랬동안 실권을 쥐어서 명성황후와 고종이 몰아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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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 128 | 이후 친정을 맡게 된 고종은 서양열강의 위협과 일본의 위협에서 메우 좋지않은 상황이었다 1875년 일본이 조선에 침략해서 조선은 결국 열강들과 대적하는걸 포기하고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채결한다. 1884년 갑신정변과 1894년 동학농민 운동도 외부의 위협과 조선왕조의 무능에서 일어난것이다. 그래도 노력은 했는데 1894년 갑오개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건 근본적인 개혁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이기고 1895년 명성황후 시해, 1904년 러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일본에 잠식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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