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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 116 | 한편, 17세기 말 국경 지역의 조선인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인삼 채취와 사냥을 하다 청나라인들과 충돌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 양국간에 국경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에 제19대 왕 숙종 때인 1712년 조선과 [[청나라]]의 두 나라 대표는 [[백두산]] 일대를 답사하고 압록강과 토문강[* 現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확정하는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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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 이후 제20대 왕 경종이 일찍 사망하자 경종의 이복 동생이었던 [[영조(조선)|영조]]가 왕위에 올랐다. 영조는 붕당을 없앨 것을 내세우며 이에 동의하는 탕평파를 육성하였고 이들을 자신의 측근으로 삼아 정국을 운영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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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 [[영조(조선)|영조]]는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민생 안정에도 힘을 쏟았다. 균역법을 실시하여 백성의 군역 부담을 줄이고, 지나친 형벌을 금지하였으며, 사형수에 대한 삼심제를 시행하여 억울하게 처벌받는 경우를 방지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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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 122 | 23대왕 순조대에는 김조순 등을 필두로한 세도정치가 성행한다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이상황을 타계하려 했으나 급사해서 이세도는 헌종,철종까지 60여년을 이어 온다. 이어 고종이 1863년 즉위한다 이때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그동안 폐단이 되었던 서원,환곡등을 10년 만에 개혁한다. 그러나 서양열강이 강화를 위해 1863년 신미양요,1871년 병인양요가 있었으나 조선은 무시했다 그리고 대원군이 너무 오랬동안 실권을 쥐어서 명성황후와 고종이 몰아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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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 124 | 이후 친정을 맡게 된 고종은 서양열강의 위협과 일본의 위협에서 메우 좋지않은 상황이었다 1875년 일본이 조선에 침략해서 조선은 결국 열강들과 대적하는걸 포기하고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채결한다. 1884년 갑신정변과 1894년 동학농민 운동도 외부의 위협과 조선왕조의 무능에서 일어난것이다. 그래도 노력은 했는데 1894년 갑오개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건 근본적인 개혁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이기고 1895년 명성황후 시해, 1904년 러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일본에 잠식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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