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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 139 | 결국, 정치권력이 [[국왕]]과 그 주변의 소수 정치 집단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는 정조 사후 세도정치가 출현하는 배경이 되었다. |
| 140 | 140 | ==== 순조 ~ 철종: 세도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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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 순조는 갑작스러운 [[정조(조선)|정조]]의 사망으로 인해 11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이에 [[영조(조선)|영조]]의 계비인 정순 왕후는 순조를 대신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수렴청정을 하였고, 정조 때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노론 벽파 세력은 정국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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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 | 노론 벽파는 1801년 자신들의 지배지체를 위협할 수 있는 천주교를 탄압하는 신유박해를 일으켰고, 이를 이용하여 시파 및 남인 세력을 제거하였다. 뿐만 아니라, 규장각 출신들을 몰아내고 [[국왕]] 직속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혁파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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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 정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조선은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 중심의 안동 김씨 세력들이 권력과 이권을 독점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다. 이후 세도 정치는 헌종의 외척 가문이었던 풍양 조씨, 철종의 가문이었던 안동 김씨까지 3대에 걸쳐 60여 년동안 지속되었다. | |
| 142 | 146 | ==== 고종의 즉위 ==== |
| 143 | 147 | 이후 친정을 맡게 된 고종은 서양열강의 위협과 일본의 위협에서 메우 좋지않은 상황이었다 1871년 병인양요가 있었으나 조선은 무시했다 그리고 대원군이 너무 오랬동안 실권을 쥐어서 명성황후와 고종이 몰아냈다. 1875년 일본이 조선에 침략해서 조선은 결국 열강들과 대적하는걸 포기하고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채결한다. 1884년 갑신정변과 1894년 동학농민 운동도 외부의 위협과 조선왕조의 무능에서 일어난것이다. 그래도 노력은 했는데 1894년 갑오개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건 근본적인 개혁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이기고 1895년 명성황후 시해, 1904년 러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일본에 잠식되고 있었다 |
| 144 | 148 | === [[대한제국]]과 멸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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