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82 vs r8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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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 84 | 그러나 광해군은 [[명나라]]에 요청을 거절할수도, 강성해진 [[후금]]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없었다. 이에 광해군은 강홍립을 명나라에 원군으로 파견하면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명령하여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실질적인 중립 외교를 펼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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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 86 | 그러나 이에 반발한 서인 세력은 1623년 광해군과 북인 세력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에 올리는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한편, 인조반정 때 큰 공을 세운 이괄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1624년 이괄의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괄의 난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 87 | === 병자호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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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 | |
| 88 |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면서 [[후금]]을 배척하는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웠다. 이에 조선 침략의 기회를 노리던 후금의 태종은 1627년 광해군의 원수를 갑는다는 구실로 3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는 정묘호란을 일으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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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 [[후금]]의 군대가 [[황해도]]까지 쳐들어오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였고, 용골산성의 정봉수와 의주 지방의 이립 등은 의병을 조직하여 관군과 함께 맞서 싸웠다. 이에 보급로가 끊어진 후금은 먼저 강화를 제안하였고,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맹약을 맺고 전쟁을 끝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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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 이후 [[후금]]은 [[명나라]]와의 전투에서 연이은 승리로 더욱 강성해져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조선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였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외교적 교섭으로 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주화론과 무력으로 대응하자는 주전론이 대립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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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 | 결국 조선에서는 치열한 논쟁 끝에 주전론이 우세하여 [[청나라]]에 군신 관계 요구를 거절하였고, 이에 청 태종은 1636년 직접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조선을 침락하여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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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 96 | 인조는 남한산성에 피난 갔으나 끝끝내 항복을 해서 전쟁이 끝난다. 그리고 그의 자손인 효종,현종대엔 참옥한 대기근 까지 닥치니 말 다했다. 그래도 효종은 어떻게든 나라를 안정시키려 노력해서 다행히 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19대왕인 숙종대에는 환국 정치성행 했으나 그의 아들 21대왕 영조대에는 탕평이 확산되었다 그리고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갖히게 해서 죽여서 다음 왕위는 정조가 맡게 된다 정조대에는 "실학"이라는 세로운 학문이 유행한다. |
| 91 | 97 | === 후기 === |
| 92 | 98 | 23대왕 순조대에는 김조순들은 필두로한 세도정치가 성행한다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이상황을 타계하려 했으나 급사해서 이세도는 헌종,철종까지 60여년을 이어 온다. 이어 고종이 1863년 즉위한다 이때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그동안 폐단이 되었던 서원,환곡등을 10년 만에 개혁한다. 그러나 서양열강이 강화를 위해 1863년 신미양요,1871년 병인양요가 있었으나 조선은 무시했다 그리고 대원군이 너무 오랬동안 실권을 쥐어서 명성황후와 고종이 몰아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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