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90 vs r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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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 82 | 그렇게 1598년 이순신이 지휘한 노량해전을 끝으로 전쟁은 끝이난다. |
| 83 | 83 | ==== 왜란 이후부터 호란 이전까지 ==== |
| 84 | [[명나라]]는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조선에 무리하게 원군을 파견하여 국력이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자 [[만주]]의 여진은 명나라의 역향력이 약해진 틈을 타 세력을 확장하였고, 1616년 만주에서 [[후금]]을 건국한다. | |
| 84 | [[명나라]]는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조선에 무리하게 원군을 파견하여 국력이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자 [[만주]]의 [[여진]]은 명나라의 역향력이 약해진 틈을 타 세력을 확장하였고, 1616년 만주에서 [[후금]]을 건국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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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 86 | 그리고 선조에 이어 즉위한 제15대 왕 광해군은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하자,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도와준 것을 내세워 조선에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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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 104 | 또한 조선은 [[청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고 [[명나라]]와 국교를 단절하였으며, 소현 세자와 훗날 효종으로 즉위하는 봉림 대군, 그리고 척화를 주장한 대표적 인물인 김상헌과 삼학사 등을 비롯하여 많은 백성들이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다. |
| 105 | 105 | === 후기 === |
| 106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청나라군이 거쳐 간 [[평안도]], [[황해도]] 일대는 크게 황폐해졌고, 해마다 [[청나라]]에게 막대한 양의 공물을 바쳐야만 했다. 그 동안 여진족을 오랑캐로 여기던 조선은 문화적 자부심에 큰 충격을 받아야 했다. | |
| 106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청나라군이 거쳐 간 [[평안도]], [[황해도]] 일대는 크게 황폐해졌고, 해마다 [[청나라]]에게 막대한 양의 공물을 바쳐야만 했다. 그 동안 [[여진족]]을 오랑캐로 여기던 조선은 문화적 자부심에 큰 충격을 받아야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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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 108 | 이후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는 시대 관계에 입각하여 다양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사신의 왕례가 활발하였지만, 한편에서는 조선의 문화가 [[명나라]] 못지않게 우수하다는 소중화론을 내세우며 청나라를 정벌하여 청나라에게 당한 치욕을 씻고,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자는 북벌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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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 110 |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다가 돌아와 즉위한 효종은 주전론을 펼쳤던 송시열, 송준길, 이완 등 서인 세력과 함께 북벌을 추진하였다. 효종은 성곽과 무기를 정비하고 어영청 등을 설치하여 군대 양성에 힘을 쏟았지만, 강력한 군사력으로 중원을 장악한 청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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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 이에 많은 대신들이 북벌을 반대하였고, 북벌을 추진하던 효종마저 사망하자, [[청나라]] 정벌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한편 효종 때 청나라와 [[루스 차르국]] 사이에 국경 분쟁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조선에 출병을 요청하였다. | |
| 112 | 이에 많은 대신들이 북벌을 반대하였고, 북벌을 추진하던 효종마저 사망하자, [[청나라]] 정벌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한편 효종 때 청나라와 [[루스 차르국]]([[러시아 차르국|러시아]]) 사이에 국경 분쟁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조선에 출병을 요청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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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 114 | 이에 조선은 두 차례에 걸쳐 조총 부대를 파견하여 [[청나라]]를 도와 러시아군과 교전하였다. 청과 사대 관계를 맺은 조선은 매년 청나라에 사신을 보내 청나라와 자주 왕래하였다. 이를 통하여 청나라의 문물과 서학이 조선에 전래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우수한 문물을 적극 수용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자는 북학론이 제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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