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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 110 | 그러나 광해군은 [[명나라]]에 요청을 거절할수도, 강성해진 [[후금]]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없었다. 이에 광해군은 강홍립을 명나라에 원군으로 파견하면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명령하여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실질적인 중립 외교를 펼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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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 그러나 이에 반발한 서인 세력은 1623년 광해군과 북인 세력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에 올리는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한편, 인조반정 때 큰 공을 세운 이괄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1624년 이괄의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괄의 난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
| 112 | 그러나 이에 반발한 서인 세력은 1623년 광해군과 북인 세력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에 올리는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한편, 인조반정 때 큰 공을 세운 이괄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1624년 이괄의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괄의 난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
| 113 | 113 |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 |
| 114 |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면서 [[후금]]을 배척하는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웠다. 이에 조선 침략의 기회를 노리던 후금의 태종은 1627년 광해군의 원수를 갑는다는 구실로 3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는 정묘호란을 일으킨다. | |
| 114 |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면서 [[후금]]을 배척하는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웠다. 이에 조선 침략의 기회를 노리던 후금의 태종은 1627년 광해군의 원수를 갑는다는 구실로 3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는 정묘호란을 일으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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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 116 | [[후금]]의 군대가 [[황해도]]까지 쳐들어오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였고, 용골산성의 정봉수와 의주 지방의 이립 등은 의병을 조직하여 관군과 함께 맞서 싸웠다. 이에 보급로가 끊어진 후금은 먼저 강화를 제안하였고,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맹약을 맺고 전쟁을 끝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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