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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 104 | 또한 조선은 [[청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고 [[명나라]]와 국교를 단절하였으며, 소현 세자와 훗날 효종으로 즉위하는 봉림 대군, 그리고 척화를 주장한 대표적 인물인 김상헌과 삼학사 등을 비롯하여 많은 백성들이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다. |
| 105 | 105 | === 후기 === |
| 106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청나라군이 거쳐 간 [[평안도]], [[황해도]] 일대는 크게 황폐해졌고, 해마다 [[청나라]]에게 막대한 양의 공물을 바쳐야만 했다. 그 동안 여진족을 오랑캐로 여기던 조선은 문화적 자부심에 큰 충격을 받아야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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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 이후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는 시대 관계에 입각하여 다양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사신의 왕례가 활발하였지만, 한편에서는 조선의 문화가 [[명나라]] 못지않게 우수하다는 소중화론을 내세우며 청나라를 정벌하여 청나라에게 당한 치욕을 씻고,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자는 북벌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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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 110 | 23대왕 순조대에는 김조순 등을 필두로한 세도정치가 성행한다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이상황을 타계하려 했으나 급사해서 이세도는 헌종,철종까지 60여년을 이어 온다. 이어 고종이 1863년 즉위한다 이때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그동안 폐단이 되었던 서원,환곡등을 10년 만에 개혁한다. 그러나 서양열강이 강화를 위해 1863년 신미양요,1871년 병인양요가 있었으나 조선은 무시했다 그리고 대원군이 너무 오랬동안 실권을 쥐어서 명성황후와 고종이 몰아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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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 112 | 이후 친정을 맡게 된 고종은 서양열강의 위협과 일본의 위협에서 메우 좋지않은 상황이었다 1875년 일본이 조선에 침략해서 조선은 결국 열강들과 대적하는걸 포기하고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채결한다. 1884년 갑신정변과 1894년 동학농민 운동도 외부의 위협과 조선왕조의 무능에서 일어난것이다. 그래도 노력은 했는데 1894년 갑오개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건 근본적인 개혁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이기고 1895년 명성황후 시해, 1904년 러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일본에 잠식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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