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70 vs r71 | ||
|---|---|---|
| ... | ... | |
| 57 | 57 | 그러나 5대 왕인 [[문종(조선)|문종]]이 일찍 죽자 그의 동생인 [[수양대군]]([[세조(조선)|세조]])가 문종의 아들인 [[단종(조선)|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왕이 된다. |
| 58 | 58 | |
| 59 | 59 | [[세조(조선)|세조]]대에는 [[세종(조선)|세종]] 30년을 걸쳐 쌓아놓은 제도가 박살나고 반정을 도운 공신들에게 과도한 혜택을줘서 조선을 퇴보 시켜놓는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9대왕 성종대에 이르어서는 유학정치가 다시 부활하고 조선의 태평성대를 맞는다. |
| 60 | === 연산군의 폭정 === | |
| 61 | 그러나 성종에 이어 즉위한 10대왕 연산군대에 이르어서는 연산군의 폭정으로 수령들의 기강이 희미해지고 나라가 매우 어려워졌다. | |
| 60 | === [[연산군]]의 폭정 === | |
| 61 | 그러나 성종에 이어 즉위한 10대 왕 [[연산군]]대에 이르어서는 연산군의 폭정으로 수령들의 기강이 희미해지고 나라가 매우 어려워졌다. | |
| 62 | 62 | |
| 63 | 결국에는 박원종등을 필두로 한 중종을 왕위에 옹립하는 중종반정이 일어난다. 그러나 조 | |
| 63 | 결국에는 박원종등을 필두로 한 중종을 왕위에 옹립하는 중종반정이 일어난다. 11대 왕이 된 중종은 중종반정에서 공을 세운 훈구 세력이 정국을 주도하자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세력을 대거 등용하였다. | |
| 64 | ||
| 65 | 조광조는 3사의 언론 활동을 활성화하고 경연을 강화하여 도학 정치의 실현을 추구하였으며 현량과를 시행하여 사람을 적극적으로 등용하고자 하였다. 또한, 도교 행사를 주관하던 소격서를 폐지하고 소학을 보급하여 유교 윤리를 확산시켰으며 위훈 삭제 등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 |
| 66 | ||
| 67 | 그러나 이러한 조광조의 급진적인 개혁은 훈구 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훈구 세력은 1519년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를 비롯한 많은 사람을 제거하였다. | |
| 64 | 68 | === [[임진왜란]]과 계속되는 전쟁 === |
| 65 | 69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임진왜란)] |
| 66 | 70 | 그리고 거진 100년이 지나 1592년 5월 23일[* 음력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조선을 전쟁초기엔 도성이 점령되고 나라의 존망을 곡정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이순신]]'''의 전술과 의병들의 게릴라 전술로 보급로를 끊고 왜군을 물리치는 활약으로 전황이 뒤집힌다. 그렇게 강화 협상을 하고 돌아가는 듯 했으나...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