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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44 | 호는 '아산(峨山)'이다. 북한 강원도 지역에 있는 고향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통천군의 '''아산'''리 지역으로 북한 행정 구역상 로상리(노상리)로 개칭했다. 즉, 충청남도 아산시와는 상관없다.] 오늘날 울산광역시에는 그의 호를 딴 [[아산로(울산)|아산로]]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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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 생애 == | |
| 47 |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아버지 정봉식과 어머니 한성실 사이의 6남 2녀 중 첫째이자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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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그의 호는 고향마을 아산리의 이름을 딴 '아산(峨山)'. 현대그룹이 전국 곳곳에 세운 [[아산병원]]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 태화강을 따라 동구와 남구를 연결하는 도로인 아산로 역시 바로 이 호를 딴 이름이다.[* 이것을 [[충청남도]] [[아산시|아산(牙山)시]]에서 온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충남 아산과는 관련이 없긴 하지만 아산시에 대형 의료기관이 없어서 제발 아산병원좀 와달라고 절규하는 아산시민들이 많다(...) 또한 이곳에도 현대자동차 공장이 아산시 인주면에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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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송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즉 지금의 [[초졸|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의 동생들의 학력은 준수하다. 둘째 동생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을 중퇴했고, 넷째 동생 정세영 현대산업개발그룹 명예회장은 [[고려대학교]]를, 막내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동국대학교]]를 각각 졸업했다. 요절한 다섯째 동생 정신영 기자는 독일에서 유학을 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맏형의 이런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동생들이 죽을 때까지 맏형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을 가능성ㅡ도 높다. 그리고 1910년대 출생자의 초졸을 현대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 당시는 정규 학교 근처에도 못간 무학이 인구 비율로 굉장히 많던 시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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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젊은 시절에는 집안의 돈을 훔쳐서 가출한 적도 있으며[* 부친이 소를 판 돈인 70원. 후에 소 떼를 몰고 방북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원래 소 한 마리에 이자를 1000배로 쳐서 두 차례에 걸쳐 총 1001마리를 올려보냈다. 이후 얘기가 나온 바로는 모두 암소인 데다가 새끼를 밴 소여서 1001마리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서울에서 경리 공부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도로 끌려간 적도 있다. 이때 아버지는 "[[레디메이드 인생|대학을 나온 놈도 실업자가 되는 판국에 너 같은 조선놈이 올라간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넌 장남이고 농사를 지어야지.]]"라면서 타일렀다고 한다. 물론 결론적으로 보면 아버지의 판단은 틀렸지만,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일리 없는 말도 아니었다. 이후 다시 가출해 인천부둣가에서 막노동 일을 해 돈을 벌며 서울에 정착했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 본관 공사장, 용산역 근처 풍전 엿공장(현재의 오리온)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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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신당동의 쌀가게 '복흥상회(福興商會)'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노름에 빠진 외아들[* 그 시대의 부잣집 자제들 중에는 시대적 상황에 염증을 느끼고 사냥, 도박, 주색으로 소일했던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일부 사냥꾼들은 [[윈체스터(총기회사)|윈체스터]] [[윈체스터 소총|라이플]]로 무장했는데, 이 윈체스터가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 힘든 값비싼 소총이었다. 혹은 [[김용환]]처럼 위장해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도 있었는데, 청년 정주영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이 복흥상회 외아들이 어느 부류를 택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에게 실망한 쌀가게 주인이 성실하게 일해온 정주영에게 가게를 매도하여 3년 뒤 쌀가게 '경일상회'를 차렸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하지만 얼마 후 일제가 쌀배급제를 시행하면서 자연스레 가게가 문을 닫았다. 이후 '아도 서비스'(ART SERVICE)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워 직원이 80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운영하였다. 그러나 화재로 건물이 전소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다행히 평소에 그의 행동을 눈여겨보았던 당시 후원인이 거금을 빌려줘 재기에 성공했다.[* 여기에도 일화가 있는데 정주영이 쌀가게를 하면서 알게 된 후원인 오윤근은 사람보는 눈이 좋아 돈을 빌려주고 떼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처음 그에게 빌린 돈으로 세운 공장이 날아가자 정주영이 그를 찾아가 다시 돈을 빌려달라면서 여기서 내게 빌려준 돈을 떼이면 당신 이력에 흠이 생기지만 다시 빌려주면 그 돈으로 재기해서 갚겠다고 했다. 이 말에 후원인도 자신이 돈을 떼인 적이 없다는 기록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빌려줘야겠다고 하며 선뜻 빌려주었고 정주영은 약속대로 돈을 갚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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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소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을 딛고 일어서서 현대그룹이라는 거대 재벌을 일군 역사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와 처절한 가난속에서 이루어낸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화의 상징처럼 기억되는 인물이다. 또한 어느 기업인들보다 청렴하고 국민들이 존경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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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2006년 [[타임지]]가 선정한 [[https://web.archive.org/web/20110411005235/http://www.time.com/time/asia/2006/heroes/bl_yung.html|아시아의 영웅들]] 리스트에도 포함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