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8 vs r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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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40 | 그러나 그 사이에 조용히 충성파들의 세력을 단결시킨 리처드가 청원파들을 숙청시키기 시작했으며 곤트의 존도 왕국의 상황이 골치 아프게 돌아가고, 일단 자신의 아들인 볼링브로크의 헨리의 목숨이 저당잡힌 신세나 마찬가지가 되었기 때문에 왕의 명령을 반하지 않고 조용히 섭정으로 지낸다. 심지어 리처드 2세가 자신의 막내 남동생인 우드스톡의 토마스를 살해하는 것도 지켜본다. 숙부의 기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확인한 리처드 2세는 살아남은 청원파이자 존의 아들인 볼링브로크의 헨리를 추방하고, 존이 사망하자, 헨리의 영지 상속을 막기 위해 랭커스터 영지마저 몰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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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이로서 리처드 2세가 숙부와 그의 세력들을 다 몰아내고 왕권을 찾았으나 왕권은 아직 불안하기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곤트의 존이 부재했을때 리처드 2세의 통치에 불만과 의심이 많았으며 숙청당한 청원파 잔당들은 프랑스에 있는 잉글랜드 왕국의 영토 등지에서 여전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왕권이 이렇게 불안한데도 리처드 2세는 아일랜드를 방문했고, 그 사이에 볼링브로크의 헨리가 되려 반란군을 조직해서 잉글랜드로 돌아와서 급하게 아일랜드에서 돌아온 리처드 2세를 사로잡아버렸다(!). 그리하여 볼링브로크의 헨리가 왕위에 올라 [[헨리 4세]]가 되었고 [[랭커스터]] 왕조를 열게 되었다(1399). 하지만 리처드 2세의 잔존세력들이 각처에서 반란을 일으킨 탓에 헨리 4세는 이들을 정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매우 간단히 줄이면 왕이 태클 걸던 사촌형을 추방시키고, 사촌형의 아버지(이자 왕의 숙부)가 죽자 상속받을 유산마저 몰수했다. 근데 사촌형이 돌아와서 왕을 사로잡고 자신이 새로운 왕이 된 거다.]. | |
| 42 | 이로서 리처드 2세가 숙부와 그의 세력들을 다 몰아내고 왕권을 찾았으나 왕권은 아직 불안하기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곤트의 존이 부재했을 때 리처드 2세의 통치에 불만과 의심이 많았으며 숙청당한 청원파 잔당들은 프랑스에 있는 잉글랜드 왕국의 영토 등지에서 여전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왕권이 이렇게 불안한데도 리처드 2세는 아일랜드를 방문했고, 그 사이에 볼링브로크의 헨리가 되려 반란군을 조직해서 잉글랜드로 돌아와서 급하게 아일랜드에서 돌아온 리처드 2세를 사로잡아버렸다(!). 그리하여 볼링브로크의 헨리가 왕위에 올라 [[헨리 4세]]가 되었고 [[랭커스터]] 왕조를 열게 되었다(1399). 하지만 리처드 2세의 잔존세력들이 각처에서 반란을 일으킨 탓에 헨리 4세는 이들을 정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매우 간단히 줄이면 왕이 태클 걸던 사촌형을 추방시키고, 사촌형의 아버지(이자 왕의 숙부)가 죽자 상속받을 유산마저 몰수했다. 근데 사촌형이 돌아와서 왕을 사로잡고 자신이 새로운 왕이 된 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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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44 | 이게 왕위계승의 법칙에서 상당히 의미가 큰 사건이다. 원래 리처드 2세 사후에 왕위 계승자는 당시에 7살짜리 어린이였던 5대 마치 백작 에드먼드 모티머[* 참고로 할아버지인 제3대 마치 백작의 이름도 에드먼드였고, 숙부의 이름도 에드먼드였다.]였다. 에드먼드 모티머는 에드워드 3세의 (장성한 아들 중에) 차남인 클래런스의 공작인 앤트워프의 라이오넬의 후손이다[* 이 사람도 오래는 못 살고 29살 때 요절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앤트워프의 라이오넬의 외동딸인 필리파의 친손자다. 리처드 2세가 후손 없이 사망하면, 에드워드 3세의 큰아들인 에드워드 왕자의 후손이 멸절되었으니, 차남인 라이오넬의 후손으로 왕위가 넘어갈 차례였다[* 참고로 볼링브로크의 헨리는 에드워드 3세의 (장성한 아들 중에) 삼남인 겐트의 존의 장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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