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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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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영국]]에서 벌어진 [[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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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전쟁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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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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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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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ffffff '''장미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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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e8b57> {{{#ffffff '''날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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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fbc8f> 1455년 ~ 148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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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년 ~ 14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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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영국]]의 [[요크#s-2]] 가문과 [[랭커스터#s-2]] 가문 사이에 벌어진, 왕위계승권 획득을 위한 내전. 30년짜리지만 사실상 본격 내전은 1461년, 혹은 1471년까지로 10여년 내외이며 단지 1483년~1485년 간의 왕위쟁탈전이 포함될 뿐이다.
24
=== 이름의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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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의 유래 ==
2523
이 내전이 장미전쟁이라 이름이 붙은 이유는 두 가문 모두 상징이 [[장미]], 즉 랭커스터 가문이 붉은 장미, 요크 가문이 [[백장미]]이기 때문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당대의 용어가 아니라 [[아이반호]]의 저자인 [[19세기]]의 소설가 [[월터 스콧]]이 만들어낸 것으로 1829년에 그가 집필한 글에 처음 나온다. 스콧이 이런 용어를 쓴 모티브는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에서 나온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는 왕궁의 정원에서 요크가의 수장 요크 공작과 랭커스터의 주요 인물인 서머셋 공작이 논쟁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타협이 불가능해지자 요크 공작이 흰 장미를 꺾어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들에게 규합을 요구하고, 서머셋 공작은 붉은 장미를 꺾어 이에 대응하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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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center">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1/War_of_Roses_White.png||VS||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d/War_of_Roses_Red.p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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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요크 가문의 문장은 백장미이고 랭커스터 가문의 문장은 붉은색[* 실제 꽃 색깔은 연분홍색이긴 하지만 위에서도 보이듯 문장 색깔은 새빨갛게 했기 때문에 붉은 장미란 말이 돈 것이다.] 장미이긴 한데 둘 다 흔히 생각하는 겹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것.[* 어떻게 보면 [[해당화]]나 [[찔레꽃]]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흔히 생각하는 겹꽃 장미는 그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겹꽃 장미는 훗날 [[18세기]]에 [[중국]]에서 월계화 품종과 저 위의 분홍색 장미를 교배시키면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장미]] 항목을 참고바람.] 참고로 저 문장은 현재도 [[http://en.wikipedia.org/wiki/Yorkshire|요크셔 주]]와 [[http://en.wikipedia.org/wiki/Lancashire|랭커셔 주]]의 문장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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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보면 상당히 막장에 막장을 거듭하는 영주들의 찬탈극 같지만 사실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은 모두 전대 영국 왕가인 [[플랜태저넷 왕조|플랜태저넷 왕가]]의 분파이다. 요크와 랭커스터 가문 모두 14세기 중반 [[에드워드 3세]]의 아들들이 [[플랜태저넷 왕조|플랜태저넷 가문]]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개창한 가문이기 때문이다. 갈라져 나온지 100년도 안 되는 셈이니 왕위를 두고 다툰 사람들의 촌수는 대부분 8촌 이내였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왕가의 집안 싸움이라고 할 만한 것. 그래서 [[튜더 왕가]] 이전엔 모두 한 왕조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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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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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3331
[[백년전쟁]](1337~1453) 중 약 1370년 쯤에 잉글랜드를 잘 다스리던 군주인 에드워드 3세는 나이가 들어서 국정이 버거워지자 살아남은 아들중 3남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에게 실질적으로 섭정을 맡긴다. 곤트의 존이 후계자였다면 괜찮은 계승으로 이어졌겠지만, 문제는 후계자는 따로 있었다. 후계자는 바로 에드워드 3세의 장남 [[에드워드 왕세자]]([[흑태자]])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왕세자는 병에 걸려 곧 죽을 것으로 보였고, 유력한 차기 후력자는 에드워드 왕세자의 아들 [[리처드 2세]]였는데 그 당시에 나이가 굉장히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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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트의 존은 처음에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괜찮은 활약을 했지만 몇번의 부진으로 인해 슬럼프가 찾아왔고 슬슬 정전협정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 지휘보다는 잉글랜드 내에서 섭정활동에 더 주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에드워드 왕세자가 먼저 사망하고, 에드워드 3세마저 사망하자 에드워드 왕세자의 아들 리처드가 리처드 2세로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곤트의 존은 정식 섭정으로 임명된다. 곤트의 존은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자 인두세를 부과했고, 가난한 평민들에게는 상당히 높은 금액이 부과되자 농민들이 난을 일으켰다(와트 타일러의 난). 다행히 어떻게 이 난을 진압했고 곤트의 존은 잉글랜드에서 위세가 추락한다[* 참고로 와트 타일러의 난때 존은 프랑스에 갔었는데 화가 난 시위대가 존의 거주지였던 성을 불태웠다.]. 그리고 존은 얼마뒤에 아내의 친정인 카스티야 왕가에 왕위쟁탈전이 벌어지자 그 곳에서 왕을 해보겠다고 잉글랜드를 비운다.
......
5755
1455년, 세인트 올 번스 전투를 시작으로 각처에서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는데 요크 공작 리처드는 1459년 블로어 히스 전투에서 승리해 왕위를 목전에 두었다. 하지만 1460년 웨이크필드 전투에서 전사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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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자 난을 일으킨 요크 가에 한때 위기가 찾아왔지만 리처드의 적자 에드워드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과 동생들과 함께 랭커스터파를 격파하면서 결국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에드워드 4세]]로 즉위했다(1461년). 그리고 헨리 6세는 잠깐이지만 다시 왕위를 되찾지만(1470)[* 이렇게 된 것은 순전히 에드워드쪽에 내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워릭 백작과 에드워드의 동생 조지가 왕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헨리 측에 붙었다.] 1년도 안되어 에드워드의 반격으로 다시 폐위(1471)된 뒤에 유배되어 사망한다[* 이걸 극도로 줄이면 8촌 형님을 왕위에서 몰아낸 8촌 동생이다. 그리고 원래 왕이었던 8촌 형은 잠깐이나마 왕위 탈환에 성공했다가 광속으로 8촌 동생에게 다시 뺏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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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와 후일담(꼽추 리처드 3세), 그리고 튜더 왕조 ===
58
== 결과와 후일담(꼽추 리처드 3세), 그리고 튜더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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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대규모의 자원을 동원하기보다는 순전히 귀족(그것도 왕가와 연계된 많은 귀족들) 간의 [[용병]] 싸움이었기 때문에 영국 내 [[귀족]]의 수가 크게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백년전쟁 등 이전의 전쟁에서는 귀족들끼리 서로를 포로로 잡아 몸값을 뜯어내려고 했지만 장미전쟁부터는 귀족이던 평민이던 적으로 만나면 죽이고 포로로 잡더라도 [[포로는 필요없다|목을 날려버리는]] 전멸전 양상으로 변하면서 피해가 더 커진 탓도 있다. 전쟁이 종료되어 헨리 튜더([[헨리 7세]])가 국왕으로 즉위할 때까지 살아남은 귀족 가문은 전쟁 전의 3할에 불과했다고. 게다가 덕분에 왕가의 손도 상당히 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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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에 오른 에드워드는 [[에드워드 4세]](1461년 즉위, 헨리의 반격(1470년) 이후 1471년 재즉위)가 되는데 13년 후인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병사하고 나서 '''평화롭던''' 요크 왕가에 (그닥?) 그의 형제인 --[[라이온킹]]의 [[스카]] 필나는-- [[꼽추]]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가 온갖 악당짓, [[수양대군]] 짓을 한다는 이야기가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연극인 [[리처드 3세]]의 이야기다. 희곡도 에드워드 4세의 즉위와 함께 시작한다.[* 하지만 리처드 3세를 지나치게 추남에 악마화한 것은 내전의 승자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조부인 헨리 튜더를 띄우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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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9
한편 이 전쟁은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이후로 지금까지 랭커스터 공작(Duke of Lancaster)[* 여성 공작일 경우에도 그냥 Duke를 쓴다. 여성형인 Duchess으로 쓸 경우 남성 공작의 부인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냥 남성형을 쓰는 것.]이라는 칭호는 잉글랜드 및 이후 영국 국왕이 보유한 비공식 칭호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 명시적으로 랭커스터 공작의 칭호를 국왕에게 부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랭커스터 공작령(Duchy of Lancaster)은 왕실 자산을 관리하는 기관처럼 되어있고, 관행적으로 국왕/여왕을 랭커스터 공작이라고도 부르는 등 관례가 남아있다. 특히 [[랭커스터]]에서...[* 랭커스터에서는 종종 [[God Save the Queen]] 1절 첫 부분 "God save our gracious Queen, long live our noble __Queen__"에서 noble Queen을 noble Duke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가사 내의 모든 Queen을 다 Duke로 바꾸는 건 아니고 딱 저 부분만.] 반면 랭커스터 가문의 맞수였던 요크 가문의 요크 공작(Duke of York) 칭호는 용도가 바뀌어서 주로 잉글랜드·영국 국왕의 둘째 아들에게 부여하는 칭호가 되었다. --요크 가문이 [[망했어요]]...-- 이 관행에 따라 [[엘리자베스 2세]]의 둘째 아들인 [[앤드루 왕자]]가 요크 공작의 칭호를 쓰고 있다.
7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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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RR 마틴]]이 [[얼음과 불의 노래]]의 [[다섯 왕의 전쟁]]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전쟁이라고 한다.
74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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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전 외전 템페스트]]의 배경이 되는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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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에서 모티브를 따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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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 왕국]]의 성왕 [[라시드 팬드래건]] 사후, 당시 태자였던 헨리가 왕위에 올랐으나, 어머니인 [[로빈(창세기전 2)|로빈]]의 혈통 문제, 그리고 [[우드스톡]]의 실종에서 비롯된 첫째 왕자가 아닌 둘째 왕자의 왕위 계승 등으로 인해 올리비아에게서 태어난 왕자 및 그를 지지하는 귀족 세력들이 반기를 들면서 시작된 전쟁.[* 원래 팬드래건 왕국의 기존 귀족들은 이올린 왕녀가 게이시르 제국 원정을 갔다가 상당수가 갈려 나갔고 그 공백을 메꾼 것이 바로 그레이 스케빈저가 이끌던 용병 기사단이다. 즉, 버몬트 파는 기존 귀족 세력이 많고 콘웰 파는 용병 기사단에서 공을 세운 신흥 세력이다. 로빈 왕비 역시 용병 기사단 출신~~이지만 사실은 사일러스에서 제국군에게 도적질하다 튄~~ 기사이다. 반대로 올리비아 왕비는 비프로스트의 왕녀다. 다만, 이 전쟁의 도화선 및 1차적인 명분은 라시드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헨리 팬드래건이 투르 제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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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태생 왕자들이 주축이 된 콘웰파는 붉은 장미를, 올리비아 태생 왕자들이 주축이 된 버몬트파는 백장미를 사용하여 장미전쟁이란 명칭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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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반 헨리가 버몬트파의 장남 조지를 살해하면서 콘웰파가 우위를 점하는 듯 보였으나, 버몬트의 차남 윌리엄, 그리고 삼남 리처드가 어머니의 고국인 비프로스트로 도망쳐서 이 나라의 지원군을 데리고 돌아와 반격하여 결국 헨리가 윌리엄에게 살해당하고 콘웰성이 함락당하면서[* 템페스트 시점에서 콘웰성에 가면 폐허가 되어있다.] 버몬트파의 승리로 끝나게 되며, 윌리엄이 새로운 팬드래건의 왕위에 오르며 장미전쟁은 일단 종결된다. 그리고, 이 일 때문인지 차후 왕이 된 클라우제비츠는 게이시르 제국의 도움도 받았고 비프로스트에 좋지않은 감정도 있었는지 차후 제국이 비프로스트를 멸망시킨 것에 대해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고 잔당토벌에도 도움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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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드스톡의 아들로 본래 콘웰파였으나, 한족과의 혼혈이라는 이유로 모두에게 배척받았던 [[클라우제비츠 팬드래건|클라우제비츠]]만이 콘웰파 왕족의 남자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제국으로 망명한다. 클레어 팬드래건은 행방불명이고 켈리 팬드래건은 아예 언급이 없어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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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이 죽고, 리처드가 그의 장자인 필립을 몰아내고 국왕에 즉위하자 클라우제비츠는 이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자기가 팬드래건의 국왕이 되면 버몬트파인 [[엘리자베스 팬드래건|엘리자베스]]와 결혼하여 장미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발언을 한다. 또한 리처드 역시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엘리자베스 팬드래건|엘리자베스]]와 결혼하려고 한다.[* 이 부분이 템페스트의 시작 부분이다.] 이에 [[엘리자베스 팬드래건|엘리자베스]]는 장미의 전쟁을 종식시킬 열쇠로 여겨져 '''장미의 신부'''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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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제비츠는 게이시르 제국의 도움과 지방 영주들을 설득해 리처드에 반기를 들게 함으로써 장미전쟁의 승리자가 되고,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써 장미전쟁은 진정한 종결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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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때 귀족들이 콘웰파와 버몬트파로 나뉘어 싸운 것이 차후 버몬트 대공과 헤이스팅스 공작 사이의 내전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100% 그런 것은 아니지만 창세기전3 메뉴얼의 내용에 따르면 버몬트에게는 구 콘웰파 귀족들이, 헤이스팅스 공작에게는 구 버몬트파 귀족들과 리처드 잔당들이 가세했다고 한다. 버몬트 대공이 헤이스팅스 공작과 언쟁할 때 버몬트와 친분이 있는 한 여성귀족이 대공을 비호하자 헤이스팅스 옆에 있던 귀족이 '흥! 이래서 콘웰파는 어쩔 수 없다니까!'고 말한 것을 보면 서로 앙금이 상당히 오래 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버몬트 대공이 내전이 끝난후 헤이스팅스편에 섰던[* 물론, 버몬트 대공은 헤이스팅스 공작과의 최종결전전에 싸움에서 빠지거나 항복한 자들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항복하지 않고 헤이스팅스와 끝까지 함께 했던 자들은 도망친 그리피스를 빼고 모두 죽었다고 한다.] 귀족들은 사피 알 딘이 살라딘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모두 처형되었다고 하니 결과적으로 줄을 잘못 선 버몬트파 귀족들은 [[망했어요]].[* 물론 케이트 호크처럼 줄을 갈아타서 살아남은 버몬트파 귀족들도 많다.] 다만, 이 결과는 왕국과 안타리아 동부의 장래에 있어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는데, 버몬트 대공이 추진한 투르 원정은 표면적으로는 아스타니아에서의 복수를 내걸었지만 진짜 의도는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을 푸는게 목적이었고, 아스타니아 멸망은 어차피 남의 나라 일인데다 실버에로우 동맹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상황이었고, 국익의 관점에서도 득이 안 되는 전쟁이었다. 때문에, 군수산업 종사자인 크리사오르 영지의 케이트 호크도 '우리도 막대한 이익을 이 전쟁으로 얻을 수 있겠지만 무의미하게 병사들의 목숨을 희생시키고 싶진 않습니다'하고 반대한 바 있었다. 버몬트 대공이 헤이스팅스를 처형한 후, 커티스를 멸망시키고[* 이 일 이후로 명목상으로만 유지되었던 실버에로우는 완전히 와해되었다고 할 수 있다.] 투르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엄청난 국력이 소비되었고, 버몬트 대공도 백치가 되어버린 결과를 보면 헤이스팅스가 반대한 것에도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버몬트 대공은 그 이전부터 록슬리와 함께 중앙집권국가로의 전환을 계획하고 있었는지라, 그점에 있어서 헤이스팅스파의 심기를 건드린 것도 있긴 했었다.]
91
92
1에서 모티브를 따온 만큼 겹치는 설정과 인물이 많은 편. 실제 역사상 인물들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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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랭커스터 가문 - 콘웰파
95
요크 가문 - 버몬트파
96
헨리 4세 ~ [[헨리 6세]] - 헨리 팬드래건
97
에드워드 4세 - [[윌리엄 팬드래건]]
98
[[리처드 3세]] - [[리처드 팬드래건]]
99
에드워드 5세 - [[살라딘(창세기전 3)|필립 팬드래건]]
100
요크 공 리처드[* 에드워드 5세의 동생으로 리처드 3세에 의해서 에드워드 5세와 함께 [[런던 탑]]에 유폐되었다.] - [[버몬트 대공|존 팬드래건]]
101
[[헨리 7세]] - [[클라우제비츠 팬드래건]]
102
요크의 엘리자베스[* 에드워드 5세와 요크 공 리처드의 누이. 후에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인 [[헨리 7세|헨리 튜터]]와 결혼하면서 장미전쟁이 끝나게 된다.] - [[엘리자베스 팬드래건]]
103
104
=== 웹 텍스트 기반의 온라인 게임 ===
105
1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생각되는 웹 텍스트 기반의 온라인 게임.
106
107
유저는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게임내에서 사냥을 다니거나 나라를 새워 왕노릇을 하거나 타 유저의 나라에 들어가 정치나 전쟁을 하거나 하는 것이 가능하다.
108
109
=== [[더비 매치]]의 하나 ===
11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일컫는 말. 이름의 출처는 1번.
111
112
맨유의 연고지인 맨체스터시가 랭커셔주에 위치해 있으며 리즈의 연고지인 리즈시가 요크셔주에 위치해 있다. 거기다 맨유의 홈 유니폼은 랭커스터 가문의 붉은 장미를 상징하는 붉은색, 리즈의 홈 유니폼은 요크 가문의 하얀 장미를 상징하는 흰색이다. [[지역감정]]에서 시작된 더비 매치인지라 과격하기로 유명하며, 툭하면 [[훌리건]]이 출동해 난동부리고 경찰을 부른다.
113
114
국내에 맨유vs리버풀의 레즈더비를 장미전쟁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지식. 정확히 말하면 무지한 스포츠 기자들이 이것저것 가져다 붙인 것이다. 심지어 한국 위키에도 장미전쟁이라고 적어놨다. 장미전쟁이 아니라고 하자 '붉은 장미전쟁'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맨유vs리버풀 경기는 그냥 '[[노스웨스트 더비|북서부더비]]'라고 부른다. 이전 버전에선 '레즈더비'라고 불리운다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이는 한국에서만 불리는 명칭이다. 실제 맨유와 리버풀은 리그 내에서 우승권을 다툼으로 인해 생겨난 라이벌 매치라 맨유vs리즈의 지역감정적 라이벌이랑은 다른 위치에 있다.
115
116
=== [[학교대사전]]의 용어 ===
117
[[학교대사전]]에서 교사들끼리 서로를 증오하여 벌이는 사투를 일컫는 말. 이들은 수업시간에 서로를 욕하는데 학생들은 이들 선생을 아주 재미있게 구경한다. 유래는 1.
118
119
비슷한 말로는 영역싸움[* 육식 동물들이 자신의 고유 영역을 지키듯 수업시간에는 교실이 교권 신수설에 의해 그 선생의 것이다. 이를 다른 선생이 침범하면...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이면 신경전이 더더욱 치열하다.]이 있다.
120
121
===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에서 유통한 TPS 게임 ===
122
[[War of the roses : Kingmaker]] 참조.
123
124
=== [[장미칼]] 업계(?)의 용어(?) ===
125
[[2013년]] 화제가 되고 있는 장미칼 업계에서 쓰는 용어. 각종 장미칼들이 '''서로를 짝퉁이네, 국적불명의 정체불명의 칼이네'''라고 디스하면서 '자기 장미칼이 킹왕짱이니 '''장미전쟁은 끝났다''''라고 외치면서 하는 말이다.
126
127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선 '그게 그거인 것 같은데' 라는 느낌일 듯--
128
129
=== [[장미전쟁(보드게임)]] ===
130
[[장미전쟁(보드게임)|항목 참조]].
131
13272
[각주]
13373
134
[[분류:15세기]][[분류:근세]][[분류:내전]][[분류:왕위 계승 전쟁]][[분류:영국의 역사]][[분류:창세기전 시리즈]]
74
[[분류:15세기]][[분류:근세]][[분류:내전]][[분류:왕위 계승 전쟁]][[분류:영국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