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9 vs r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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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22 | == 특징 == |
| 23 | 23 | 1910년 8월 29일은 을사늑약, 정미늑약으로 각종 이권을 탈취당해 사실상 망한 [[대한제국]]이 완전히 일본에 합병되는 대한제국 입장으로는 굴욕적인 날이었으며, 당시 조선총독부가 등장하여 끊임없이 조선인들을 탄압하였다. [[조선총독부]] 이전에 [[한국통감부]]가 [[을사늑약]] 당시 창설되어 조선총독부가 생길 때까지 존재한 것이다. 즉 사실상 1905년부터는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라 봐도 무방하다. |
| 24 | == 역사 == | |
| 25 | === 무단통치기 === | |
| 26 | 병합 이후 조선은 일본 육군의 현역 대장 신분인 총독이 통치하는 무단통치를 받았고, 일본 육군 헌병대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찰 업무까지 수행하는 헌병경찰제를 시행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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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3.1운동 이 | |
| 28 | 무단통치는 1919년 3.1 운동이라는 전국적인 항쟁이 일어나고 제2대 총독으로 재임하던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해임되면서 막을 내렸고, 3대 총독으로 해군 대장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하면서 문화통치로 전환되었다. | |
| 29 | === 문화통치기 === | |
| 30 | 3.1운동 이후 일제는 식민통치 정책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하여 보통경찰제를 실시하고 문관도 총독으로 부임할 수 있도록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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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 | |
| 32 | 그러나 보통경찰 역시 헌병 못지 않게 조선인을 억압적으로 대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문관 총독은 식민지배가 종식될 때까지 단 한 명도 부임하지 않는 등 문화통치는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조선인을 유화적으로 대하는 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 |
| 33 |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성립과 활동 ==== | |
| 34 | 3.1 운동 이후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주권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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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 식민 지배의 종식과 해방 == | |
| 36 |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13도 대표들이 한성정부를 수립하고, [[중화민국]]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소비에트 러시아|러시아]] [[연해주]]에서는 대한국민의회가 각각 수립되었는데, 국내 대표들이 결성하여 가장 정통성이 높은 한성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되 실질적으로는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성정부와 대한국민의회를 흡수하는 형식으로 통합이 이루어졌다. | |
| 37 | ====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성장 ==== | |
| 38 | 일부 독립운동가들은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를 수용했고, 이에 따라 한인사회당, [[고려공산당]] 등 사회주의 [[정당]]을 표방하는 독립운동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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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이들 가운데 고려공산당은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로 나뉘어 대립하다 해산되긴 했으나, 이후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국내에도 침투하여 조직 기반을 다졌고 이에 따라 1925년에 [[조선공산당]]이 창당되었다. | |
| 41 | === 민족말살통치기 === | |
| 42 |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 제국이 국가총동원 체제에 돌입하자, 조선인을 강압적으로 일본인에 동화시켜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민족말살통치를 시행했다. | |
| 43 | == [[8.15 광복|식민 지배의 종식과 해방]] == | |
| 32 | 44 | 1945년 8월 15일에, 일본 제국이 항복을 선언하며 자연스럽게 이 식민지도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도 잠시, 미국과 소련이 이 곳에 들어와 각각 군정을 설립하였다. --광복 아닌 광복-- 그러다가 6.25가 터진 이후 현재까지 [[남북분단]]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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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46 | == 현재 한반도 국가와 일본 관계에 끼친 영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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