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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7 | [[슬로바키아]] 출신으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제1서기]]를 역임한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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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대대적인 자유화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유명하다. 검열 폐지, 거주 이전의 자유 등 파격적인 민주화 조치를 단행했으나, 이를 위협으로 간주한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 조약 기구]]군의 침공으로 실각했다. 이후 긴 은둔 생활을 거쳐 [[1989년]] [[벨벳 혁명]] 당시 화려하게 복귀하며 동유럽 민주화의 산증인이 되었다. | |
| 9 |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대대적인 자유화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유명하다. 검열 폐지, 거주 이전의 자유 등 파격적인 민주화 조치를 단행했으나, 이를 위협으로 간주한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 조약 기구]]군의 침공으로 실각했다. 이후 긴 은둔 생활을 거쳐 [[1989년]] [[벨벳 혁명]] 당시 화려하게 복귀하며 동유럽 민주화의 산 증인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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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11 | == 생애 == |
| 12 | 12 | [[1921년]] [[11월 27일]] 슬로바키아의 우그로베츠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소련]]에서 성장하며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반나치 저항 운동에 참여했고, 전후 당내 핵심 요직을 거쳐 [[1968년]] [[1월 5일]] 안토닌 노보트니를 대신해 당 제1서기에 취임했다. 그는 집권 직후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했으나, 그해 [[8월 20일]] 소련군의 탱크가 프라하를 점령하며 개혁은 좌절되었다. [[1970년]] 당에서 제명되어 벌목공 등으로 일하며 감시 속에 살던 그는 [[1989년]] [[11월]] 벨벳 혁명이 일어나자 광장에 나타나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1989년]] [[12월 28일]] 연방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민주 정부 수립에 기여했으나, [[1992년]] [[11월 7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프라하]]에서 생을 마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