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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1 | [[분류:나치 독일의 정치인]][[분류:1906년 출생]][[분류:1962년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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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5 | == 개요 == |
| 5 | 6 |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1906년]] [[3월 19일]] ~ [[1962년]] [[6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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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8 | [[나치 독일]]의 친위대 중령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였다. 유럽 각지의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와 절멸 수용소로 운송하는 열차 시간표를 짜고 물류를 관리한 '행정적 학살자'로 알려져 있다. 전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했으나 [[모사드]]에 의해 압송되었으며, 그의 재판 과정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가 제창한 '악의 평범성' 개념의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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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10 | == 생애 == |
| 10 | [[1906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했다. [[1932년]] 나치당과 친위대에 입당하였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유대인 이주 및 운송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1942년]] [[반제 회의]]에 참석하여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의 실행 계획을 구체화했다.독일 패전 후 가명을 사용하며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지냈으나,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결국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어 [[1962년]] 이스라엘 역사상 유일하게 사형을 집행받아 생을 마감했다. | |
| 11 | [[1906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했다. [[1932년]] 나치당과 친위대에 입당하였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유대인 이주 및 운송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1942년]] [[반제 회의]]에 참석하여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의 실행 계획을 구체화했다. 독일 패전 후 가명을 사용하며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지냈으나,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결국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어 [[1962년]] 이스라엘 역사상 유일하게 사형을 집행받아 생을 마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