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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8 vs r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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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미야역(사이타마)|오미야역]] 소요 사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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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이 날도 어김없이 준법투쟁 때문에 국철 시각표는 혼란스러웠다. 특히 24일은 27일에 있을 교통 총파업을 앞두고 준법투쟁을 강화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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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6시 30분경, 오미야역에서 [[도호쿠 본선]]과 [[타카사키선]]이 준법 투쟁에 의해 1시간 30분 가량이 지연되고 있던 것과 퇴근 시간이 겹친 것으로 승강장에는 승객이 넘쳐났다. 이에 일부 승객이 역장실을 점거하는 소동을 일으키는 등 한때는 상황이 매우 험악해졌지만, 사이타마현 경찰 병력이 출동하며 진화에 나섰고 [[도부 철도]]의 노다선이나 버스 노선 등으로 분산유도를 하면서 겨우 진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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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후 4시 30분경, 오미야역에서 [[도호쿠 본선]]과 [[타카사키선]]이 준법 투쟁에 의해 1시간 30분 가량이 지연되고 있던 것과 퇴근 시간이 겹친 것으로 승강장에는 승객이 넘쳐났다. 이에 일부 승객이 역장실을 점거하는 소동을 일으키는 등 한때는 상황이 매우 험악해졌지만, 사이타마현 경찰 병력이 급히 출동하며 진화에 나섰고 [[도부 철도]]의 노다선이나 버스 노선 등으로 분산유도를 하면서 겨우 진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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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아카바네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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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아카바네역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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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야역과는 다르게 아카바네역 도호쿠 본선 및 다카사키선 하행 승강장에서는 전혀 도착하지 않는 열차에 승객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었다. 심지어 오후 8시에는 '''아오모리행 급행 츠가루호를 우츠노미야역까지 보통열차로 운행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정시 운행 중이었다면 츠가루 1호는 19시 35분에 우에노역에서 출발해야 했으나 준법투쟁과 화물 적재 지연의 영향으로 20시 15분이 돼서야 발차했고 출발할 때부터 열차 안에는 지옥도가 펼쳐진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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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야역과는 다르게 아카바네역 도호쿠 본선 및 다카사키선 하행 승강장에서는 전혀 도착하지 않는 열차에 승객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었다. 심지어 오후 8시에는 '''아오모리행 급행 츠가루호를 우츠노미야역까지 보통열차로 운행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정시 운행 중이었다면 츠가루 1호는 오후 7시 35분에 우에노역에서 출발해야 했으나 준법투쟁과 화물 적재 지연의 영향으로 20시 15분이 돼서야 발차했고 출발할 때부터 열차 안에는 지옥도가 펼쳐진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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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가루호가 아카바네 역에 도착하기 전에 상행 중거리 열차가 역에 들어왔는데 홈 안의 승객 1,500명이 오지 않는 하행열차에 불만이 폭발해 '정차 중인 열차를 되돌려서 하행으로 운전해라.'고 요구하고 기관사를 끌어낸 후 열차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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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시 30분, 츠가루 1호가 수백 명이 기다리는 아카바네역에 들어왔으나 '''[[우에노역]]에서부터 승객을 마구잡이로 태우고 도착했던 터라''' 이 이상의 승객을 더 태울 수 없었다. 이에 이용객들은 기관차를 둘러쌌고 이 기세에 놀란 기관사는 임무를 내팽개치고 도망갔다. 츠가루 1호는 꿈쩍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승객들은 움직이지 않는 열차 창문을 깨부수기 시작했으며 국철 측은 [[케이힌토호쿠선]]으로 승객을 분산하려고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이 노선의 열차 또한 신호기 고장으로 아카바네역 바로 앞에서 운행을 정지했고 버티다 못한 승객들이 '''철길 위를 도보로 걸어서''' 이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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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30분, 츠가루 1호가 수백 명이 기다리는 아카바네역에 들어왔으나 '''[[우에노역]]에서부터 승객을 마구잡이로 태우고 도착했던 터라''' 이 이상의 승객을 더 태울 수 없었다. 이에 이용객들은 기관차를 둘러쌌고 이 기세에 놀란 기관사는 임무를 내팽개치고 도망갔다. 츠가루 1호는 꿈쩍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승객들은 움직이지 않는 열차 창문을 깨부수기 시작했으며 국철 측은 [[케이힌토호쿠선]]으로 승객을 분산하려고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이 노선의 열차 또한 신호기 고장으로 아카바네역 바로 앞에서 운행을 정지했고 버티다 못한 승객들이 '''철길 위를 도보로 걸어서''' 이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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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카바네역은 6천 명이 넘는 승객들로 넘쳐났다. 화가 날 대로 난 승객들은 역장실로 몰려가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급히 경시청에서 기동대를 출동시켰으나, 이를 본 시민들의 분노가 더욱 커져 결국 대치상황까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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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 아카바네역은 6천 명이 넘는 승객들로 넘쳐났다. 화가 날 대로 난 승객들은 역장실로 몰려가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에 급히 경시청에서 기동대를 출동시켰으나, 이를 본 시민들의 분노가 더욱 커져 결국 대치상황까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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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시 30분 경에는 1번 선에 정차되어 있던 [[케이힌토호쿠선]] 이소고역행 열차 내부에서 발연통이 폭발해 차내가 파괴되었다. 22시 30분 경에는 어느 남성이 운전대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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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 30분 경에는 1번 선에 정차되어 있던 [[케이힌토호쿠선]] 이소고역행 열차 내부에서 발연통이 폭발해 차내가 파괴되었다. 22시 30분 경에는 어느 남성이 운전대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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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바네역에서 열차운행이 중지되며 [[야마노테선]] 등 다른 노선에도 영향이 전해졌고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국철 노선들은 유례가 없는 대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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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 전역으로 번진 폭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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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역에서는 21시 전부터 출발하지 않는 열차 때문에 지친 승객들이 타카사키선 [[카고하라역]]행 열차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Grand Theft Auto 시리즈|타카사키선과 토호쿠 본선 양쪽의 기관사를 끌어내어 열차를 끌고 가 버렸다.]] 7번 선 승강장에서 승객 3천 명이 발화통에 불을 붙이고 유리창을 깨부수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역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이때부터 역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었으며 승객들이 더욱 폭력적으로 변하자 출동한 경찰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폭도들은 역사의 매표소 등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직원들은 전부 도주해 역이 무인상태가 되었다. 이후에도 파괴행위는 계속되어 0시 20분 경에는 역 광장에서 방화소동이 일어났고 움직이지 않는 열차의 행선판을 뜯어내 불 속에 던져넣는 사태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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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역에서는 오후 9시 전부터 출발하지 않는 열차 때문에 지친 승객들이 타카사키선 [[카고하라역]]행 열차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Grand Theft Auto 시리즈|타카사키선과 토호쿠 본선 양쪽의 기관사를 끌어내어 열차를 끌고 가 버렸다.]] 7번 선 승강장에서 승객 3천 명이 발화통에 불을 붙이고 유리창을 깨부수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역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이때부터 역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었으며 승객들이 더욱 폭력적으로 변하자 출동한 경찰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폭도들은 역사의 매표소 등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직원들은 전부 도주해 역이 무인상태가 되었다. 이후에도 파괴행위는 계속되어 다음날 오전 0시 20분 경에는 역 광장에서 방화소동이 일어났고 움직이지 않는 열차의 행선판을 뜯어내 불 속에 던져넣는 사태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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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역]]에서는 우에노역의 소란 발생 영향을 받아 21시 10분 경부터 소란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21시 30분 경에는 역장이 야마노테선의 운행 중지를 안내했고 사철과 다른 노선들로 승객을 분산시키려 했다. 이에 승객들이 역장실에 난입하는 소동이 있었다. 22서쪽 출구 요금정산소와 매점이 습격당했다. 동쪽 출구에서는 철도공안실에 방화가 벌어지는 소동이 일어났다. 폭동은 그 다음날 7시까지 계속되었으며 가담자는 최대 2만 명에 이르렀다. 신주쿠역의 직원들은 도망가지 않고 사태 수습에 끝까지 힘을 써서 후에 감사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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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역]]에서는 우에노역의 소란 발생 영향을 받아 21시 10분 경부터 소란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오후 9시 30분 경에는 역장이 야마노테선의 운행 중지를 안내했고 사철과 다른 노선들로 승객을 분산시키려 했다. 이에 승객들이 역장실에 난입하는 소동이 있었다. 오후 10에는 서쪽 출구 요금정산소와 매점이 습격당했다. 동쪽 출구에서는 철도공안실에 방화가 벌어지는 소동이 일어났다. 폭동은 그 다음날 7시까지 계속되었으며 가담자는 최대 2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주쿠역의 직원들은 도망가지 않고 사태 수습에 끝까지 힘을 써서 후에 감사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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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시부야역]], [[아키하바라역]], [[유라쿠초역]] 등 총 38개 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파괴, 방화 등 폭동이 벌어졌다. 군중은 32,000명에 이르렀고 일부는 현금, 승차권, 매점의 상품을 약탈하기도 해서 피해액은 현금으로만 1천만 엔이 넘어갔다. [[이케부쿠로역]]에서는 군중끼리 싸움이 벌어졌고 [[칸다역(도쿄)|칸다역]]에서는 택시를 향해 돌을 던지는 일도 있었다. [[신바시역]]에서는 역 시설의 파괴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가스 누출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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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이에 22에 [[경시청]]에서는 파괴행위 방지, 역무원과 차량보호를 위해 기동대를 최대한으로 소집하는 한편 각 역장들과 역무원들에게 대기명령을 내리도록 지시했다. 23시 30분에는 각 경찰관에게 악질행위자를 체포, 검거하고 사건 확대 방지를 위한 대체 열차편 확보 지시를 내리고 각 사철에 전동차와 버스의 임시운행과 막차시간 연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미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소란에는 유효한 방법이 없었고 군중에 겁을 먹은 역무원들이 줄행랑을 치는 사태가 줄줄이 발생해 사태를 수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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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에 [[경시청]]에서는 파괴행위 방지, 역무원과 차량보호를 위해 기동대를 최대한으로 소집하는 한편 각 역장들과 역무원들에게 대기명령을 내리도록 지시했다. 오후 11시 30분에는 각 경찰관에게 악질행위자를 체포, 검거하고 사건 확대 방지를 위한 대체 열차편 확보 지시를 내리고 각 사철에 전동차와 버스의 임시운행과 막차시간 연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미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소란에는 유효한 방법이 없었고 군중에 겁을 먹은 역무원들이 줄행랑을 치는 사태가 줄줄이 발생해 사태를 수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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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측에서는 21시 30분에 투쟁을 중지하고 전면 협력하기로 했으나 때는 어서 21시 45분 경에는 아카바네선, 케이힌도호쿠선, 야마노테선, [[도호쿠 본선]], 타카사키선, [[조반선]](조반선 각역정차 포함)이 이미 운행정지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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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측에서는 오후 9시 30분에 투쟁을 중지하고 정부에 전면 협력하기로 했으나 이미 물은 엎진 지 오래라오후 9시 45분 경에는 아카바네선, 케이힌도호쿠선, 야마노테선, [[도호쿠 본선]], 타카사키선, [[조반선]](조반선 각역정차 포함)이 이미 운행정지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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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다수의 철도차량과 시설이 파손되어 수도권에서는 '''4월 25일 10시까지 열차운행이 전면 중지되었''' 이후에도 한동안 정상화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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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다수의 철도차량과 시설이 파손되어 '''4월 25일 10시까지 수도권 내 열차운행이 __전면 중지__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사실상 복구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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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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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계서[* 군에서 사용하는 인수인계할 때 그 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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