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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0 vs r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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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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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치하에서도 대남국이라는 국호와 명목상의 응우옌씨 황제는 유지되었는데, 수도 후에가 있는 중부 안남과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 통킹은 보호령이었고, 남부 코친차이나는 프랑스의 직할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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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치하에서의 독립운동은 초기에는 황실에 충성하는 유학자들이 주도하다가, 1920년대부터는 [[중국국민당]]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 국민당]]이 주도했고, 1930년대부터는 호찌민의 [[인도차이나 공산당]][* 본래 [[베트남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되었으나, 코민테른과 [[소련]]의 지령에 따라 [[라오스]],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운동까지 담당하기 위해 확대 개편하면서 당명을 변경했다.]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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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치하에서의 독립운동은 초기에는 황실에 충성하는 유학자들이 주도하다가, 1920년대부터는 [[중국국민당]]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 국민당]]이 주도했고, 1930년대부터는 [[호찌민]]의 [[인도차이나 공산당]][* 본래 [[베트남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되었으나, 코민테른과 [[소련]]의 지령에 따라 [[라오스]],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운동까지 담당하기 위해 확대 개편하면서 당명을 변경했다.]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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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항복하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부는 [[비시 프랑스]]에 충성했고, 비시 프랑스 정부의 방침에 따라 별다른 저항 없이 일본군의 주둔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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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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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분단 및 [[베트남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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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에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종식되면서 프랑스군이 철수한 후, 남부의 베트남국에서는 공산정권([[베트남 민주공화국]])과 [[프랑스 제4공화국|프랑스]] 양측 모두를 비판하던 우익 성향 독립운동가 응오딘지엠이 정권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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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의 호찌민은 응오딘지엠에게 남북 총선거를 통한 통일국가 수립을 제안했으나, 응오딘지엠은 이를 거절했고 1955년에 독자적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바오다이를 폐위하고 '''[[베트남 공화국]]'''을 수립했고, 이로써 베트남의 남북 분단시대, 그리고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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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의 [[호찌민]]은 응오딘지엠에게 남북 총선거를 통한 통일국가 수립을 제안했으나, 응오딘지엠은 이를 거절했고 1955년에 독자적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바오다이를 폐위하고 '''[[베트남 공화국]]'''을 수립했고, 이로써 베트남의 남북 분단시대, 그리고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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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시대 초기에 북베트남과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은 주로 국지교전을 반복했으나,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고 [[대한민국]], [[태국]], [[호주]] 등 다른 친미 국가들까지 참전하면서 본격적인 국제전으로 확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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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이르러 [[베트남 공산당]]은 기존 [[공산주의]] 경제 정책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본주의를 수용하른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추진했고, 1989년에는 캄보디아에서도 철군하면서 10년에 걸친 베트남-캄보디아 전쟁을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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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시진핑]] 정권과 같은 일인독재로는 흐르지 않는 집단지도체제가 지속되었고, 경제적으로 지속적인 고도 성장을 보이면서 신흥공업국으로서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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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시진핑]] 정권과 같은 일인독재로는 흐르지 않는 집단지도체제가 지속되었고, 경제적으로 지속적인 고도 성장을 보이면서 신흥공업국으로서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