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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 vs 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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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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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들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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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table width=450><table align=right><table bordercolor=#00778b>{{{#!wiki style="margin: -5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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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ichaelJordanrecently.jpg|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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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001f> {{{#ffffff ''' 시카고 불스 No.2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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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2630> {{{#ff9f00 ''' 마이애미 히트 No.2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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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78b> '''{{{#ffffff 샬럿 호네츠 & 그린즈브로 스웜 구단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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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7> '''{{{#7aabde 마이클 제프리 조던 [br] (Michael Jeffrey Jord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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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778b,#00778b><width=100><|2> '''{{{#white,#e5e5e5 출생}}}''' ||<colbgcolor=#fff,#1f2023>[[1963년]] [[2월 17일]] ([age(1963-02-1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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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 [[브루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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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e5e5e5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width=2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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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e5e5e5 대학 팀}}}''' ||[[노스 캐롤라이나 타 힐스]] (1981~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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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e5e5e5 신체}}}''' ||198 cm[* 착화 기준 198cm (6' 6") / 맨발 신장 196 cm (6' 5") / 윙스팬 211cm (6' 11")] / 98 kg[* NBA 활동 당시의 체중이다. 현재 체중은 당연히 이때보다 훨씬 더 나간다. 조던의 몸무게는 사실 변화가 꽤 있었는데 데뷔 당시부터 88년도까진 200파운드(91kg) 정도였으나 이후 배드보이즈의 거친 육탄방어에 대항하기 위해 91kg에서 2kg씩 꾸준히 벌크업을 시작, 1차 쓰리핏 시기에는 218파운드(98.8kg)의 체중이였으며 (이때가 가장 유명했던 때라 조던 관련 잡지 기사나 카드 등에 이렇게 많이 표기된다, 또한 조던도 인터뷰에서 본인의 전성기 체중은 218파운드라고 언급했었다.) 1차 은퇴 후 야구에 적합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 체중을 늘렸다가 복귀 후 2차 쓰리핏때는 다시 감량을 해 104kg정도의 몸을 유지했다. 워싱턴 시절엔 몇년동안 쉬고 나이도 들어서 몸도 좀 불었기에 이보다 더 나갔었다,약 240파운드(109kg)정도로 활동 ] 31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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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e5e5e5 포지션}}}''' ||'''[[슈팅 가드]]'''[* 2차 은퇴까지 커리어의 대부분을 SG로 뛰었지만 수비 시에는 상대방의 PG를 맡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맡은 역할은 가드보다는 포워드에 가깝긴 했지만 수비는 주로 상대 가드를 막았으니까.) 3차 은퇴 이전인 워싱턴 시절에는 주로 SF로 뛰었다. 1988-89 시즌에는 [[포인트 가드]]로도 뛴 적이 있었는데, 89년 3월 25일 경기를 시작으로 '''11경기 동안 트리플 더블 10번'''을 달성하기도 했다. 시즌 평균은 '''32.5득점 8리바 8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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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e5e5e5 후원사}}}''' ||'''[[에어 조던]]'''[* 나이키가 전 종목 통틀어서 종신 계약한 3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다른 2명은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현재 조던과 나이키의 관계는 단순히 후원사와 선수 간의 관계 수준이 아니다. 에어 조던은 마이클 조던의 영향력을 통해 인지도 높은 나이키의 프리미엄 독자 브랜드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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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e5e5e5 드래프트}}}''' ||'''1984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 [br] [[시카고 불스]]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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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e5e5e5 역대 소속팀}}}''' ||'''[[시카고 불스]] (1984-1993)''' [br] [[시카고 화이트삭스#s-4.2|버밍햄 배런스(야구)]][* 잠깐 은퇴를 했을 때 갔던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더블A 야구팀이다.] (1994) [br] '''[[시카고 불스]] (1995-1998)''' [br] [[워싱턴 위저즈]] (200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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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e5e5e5 등 번호}}}''' ||'''23번''',[* 23번을 단 이유는 매우 유명한데, 조던과 그의 형 래리는 마당에 있는 골대에서 주구장창 1대1을 했는데, 어린 시절 마이클은 그를 한번도 못 이겼다고 한다. 그러자 "형의 반이라도 됐으면..."하는 마음에 형 번호인 45번의 절반 정도인 23번을 택했다고...] 45번,[* 첫번째 복귀 당시 달았던 번호, 잠시 야구로 외도했을 때 달았던 번호이기도하다.] 9번,[* 미국 국가대표 등번호.] 12번[* 1990년 올랜도 원정에서 누군가가 락커룸에서 23번 유니폼을 훔쳐가는 바람에 급한대로 남아 있던 12번 유니폼을 입었다. 원정 팬의 유니폼을 빌려입으려고 했지만 사이즈가 작았다고 한다. 이 경기의 사진을 찾아보면 등 번호는 있는데 이름 마킹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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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e5e5e5 수상 내역}}}'''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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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bachampionfts.png|width=auto&height=20]] [[NBA 파이널|NBA 챔피언]] 6회 ([[1991 NBA 파이널|1991]]-[[1992 NBA 파이널|1992]]-[[1993 NBA 파이널|1993]], [[1996 NBA 파이널|1996]]-[[1997 NBA 파이널|1997]]-[[1998 NBA 파이널|1998]])''' [br] '''[[파일:nbachampionfts.png|width=auto&height=20]] [[NBA 파이널]] MVP 6회 ([[1991 NBA 파이널|1991]]-[[1992 NBA 파이널|1992]]-[[1993 NBA 파이널|1993]], [[1996 NBA 파이널|1996]]-[[1997 NBA 파이널|1997]]-[[1998 NBA 파이널|1998]])''' [br][[파일:nbalogofeelthespace.png|width=auto&height=20]] ''' NBA 정규시즌 MVP 5회 (1988, 1991-1992, 1996, 1998)''' [br] [[파일:nbalogofeelthespace.png|width=auto&height=20]] '''올-NBA 퍼스트 팀 10회 (1987-1993, 1996-1998)''' [br] [[파일:nbalogofeelthespace.png|width=auto&height=20]] '''NBA 득점왕 10회 (1987-1993, 1996-1998)''' [br] [[파일:nbalogofeelthespace.png|width=auto&height=20]] '''NBA 올해의 수비수상 (1988)'''[* 무려 '''가드 출신 수상자'''이다. 수비수상 특성상 포워드-센터 포지션 선수가 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업적이다. 역대 가드 출신 수상자로는 마이클 조던과 [[게리 페이튼]]을 포함한 5명이 전부이고, 이 시즌에 생애 첫 정규시즌 MVP와 함께 득점왕, 올해의 수비수상을 모두 수상하며 말 그대로 공격과 수비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했다. ] [br] [[파일:nbaallstatfts.png|width=auto&height=20]] [[NBA 올스타전|NBA 올스타]] 14회 (1985-1993, 1996-1998, 2002-2003)[* 1986년 올스타전은 부상으로 뛰지 않았다. 실제 출전은 13회.] [br] [[파일:nbaallstatfts.png|width=auto&height=20]] [[NBA 올스타전]] MVP 3회 (1988, 1996, 1998) [br] '''[[파일:nbalogofeelthespace.png|width=auto&height=20]]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9회 (1988-1993, 1996-1998)''' [br] [[파일:nbalogofeelthespace.png|width=auto&height=20]] 올-NBA 세컨드 팀 (1985) [br] [[파일:nbalogofeelthespace.png|width=auto&height=20]] NBA 올해의 신인상 (1985) [br][[파일:nbalogofeelthespace.png|width=auto&height=20]] NBA 올-루키 퍼스트 팀 (1985) [br] [[파일:nbalogofeelthespace.png|width=auto&height=20]] NBA 올해의 스틸왕 3회 (1988, 1990, 1993) [br] [[파일:nbalogofeelthespace.png|width=auto&height=20]] NBA 슬램덩크 콘테스트 챔피언 2회 (1987-1988) [br][[파일:ncaafts.png|width=auto&height=20]] NCAA 챔피언 (1982) [br][[파일:ncaafts.png|width=auto&height=20]] 네이스미스협회 선정 올해의 대학선수상 (1984) [br] [[파일:101717371_10157361142026367_5461677535412617216_n.jpg|width=auto&height=15]]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 인물|올해의 스포츠맨]] (1991) [br] [[파일:usafeelthespace.png|width=auto&height=20]]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 (2016) [br] [[파일:hofftsfts.png|width=auto&height=20]]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9)''' [br][[파일:olympicfts.png|width=auto&height=20]]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D4AF37 금메달}}}''' [br][[파일:olympicfts.png|width=auto&height=20]]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D4AF37 금메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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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e5e5e5 재산}}}''' ||16억 달러 (한화 약 1조 7669억 원)[* 2021년 2월 포브스 기준][* 유'''일'''한 운동선수 출신 [[억만장자]]로 조던 다음으로 재산이 많은 스포츠 스타는 약 1조원의 재산을 보유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르브론 제임스]] 정도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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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e5e5e5 가족}}}''' ||슬하 2남 3녀[* 전 부인 주아니타 바노이 슬하 장남 제프리 조던, 차남 마커스 조던, 장녀 쟈스민 조던][* 현 부인 이베트 프리에토 슬하 일란성 여아쌍둥이 빅토리아 조던, 이사벨 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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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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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d4001f>{{{#!wiki style="margin: -5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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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ordan.jpg|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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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농구]] 선수, [[야구]] 선수, 사업가. 선수 시절 포지션[[슈팅 가드]]. NBA [[샬럿 호네츠]] [[NBA G 그]] 그린즈브로 스 사업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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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ㅋ미없는 번호였다.]이 가지는 상징 이상으로 여겨지거나 아예 부담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 만큼 조던이 아무 의미 없던 특정 백넘버[* 현재까지 23번을 주로 달고 명예전당에 헌액된 선수는 조던 외에는 [[프랭크 램지]] 캘빈 머피 뿐이며, 훗날 헌액이 사실상 확실시되는 [[르브론 제임스]]까지 해봐야 네 명이다. 게다가 램지는 50년대 선수였고 램지와 머피 둘 다 NBA를 주름잡던 선수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번호 자체의 상징성사실상 거의 없었다. 오히려 NBA에서 전통적으로 레전드들이 많이 달았던 번호는 33번으로 [[카림 압둘 자바]], [[래리 버드]], [[패트릭 유잉]], [[알론조 모닝]], [[스카티 피펜]], [[랜트 힐]] 등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달았고, 샤킬 오닐조차도 원래 아마추어 시절 33번을 달다가(유잉을 존경해서 선택한 번호이다.) 프입단 이후엔 33번을 누가 이미 달고 있어서 32번으로 바꿨다. 레이커로 이적해서는 레전드 카림 압둘 자바 때문에 33번이 결번되어 있어 34번을 선택했는데 34번 역시 결번되었다.]에 이 정도 미를 부여했을 정도로 얼마나 대 업적을 남겼는지 어렴풋 알 수 있다. 그의 시그니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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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를 비롯하여 그 누구도 이견이 없는 독보적인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ESPN,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슬램 등 수 많은 스포츠/농구 매체에서 매년 역대 선수 랭킹을 내놓는데, 시대가 다른 선수들의 커리어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기준이 애매하고, 뭐가 더 위대한지에 대한 기준도 애매한지라 전문가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랭킹은 통일되는 경우가 없다. 예를 들어 어떤 매체에서는 우승 횟수가 독보적인 빌 러셀을, 어떤 매체에서는 개인 기량이 압도적인 윌트 체임벌린, 어떤 매체에서는 종합적인 커리어가 뛰어난 카림 압둘 자바를 더 높게 평가한다. 매직 존슨도 이들보다 높게 평가될 때도 있으며, 최근 르브론 제임스가 이 라인에 합류했다. 그러나 어떤 매체라도 조던의 1위 자리는 고정이다. 조던이 98년 은퇴한 이후 공신력 있는 스포츠 매체에서 조던이 아닌 다른 선수를 역대 1위에 놓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은퇴 이후 스타들이 그의 아성에 가까워질 때마다 조던 VS 논란이 일지만(이전 시대에 코비가 그랬고 최근까지 르브론이 그랬다) 객관적인 실적에서 너무 뚜렷히 차이가 나는지라 그 선수들의 커리어 말년이 되면 이런 비교는 슬그머니 사라진다.]이자,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60103/962209|미국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스타 1위에 선정]][* 2위는 [[베이브 루스]] 3위는 [[무하마드 알리]].]된 선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선수 중 한 명'''이다. 조던은 농구를 넘어 '''[[1990년대]] 전세계 대중문화의 아이콘 중 한 명'''이었다. 또한 대중음악계의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미국의 인종차별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조던과 잭슨 이전에는 [[재키 로빈슨]]과 [[무하마드 알리]]가 인종차별완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4명 모두 각 분야에서 위대한 존재로 꼽히며, 4명 모두 '스미소니언이 선정한 위대한 미국인 100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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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은 Air, His Airness[* His Highness + Air. 참고로 소유대명사 + Highness는 왕족들에게 붙이는 경칭이다. 우리 말로 하면 전하 혹은 폐하.], MJ[*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별명이기도 하다. ], Black Cat[* 젊은 시절에 한시적으로 불리웠던 별명.], Black Jesus[* 조던의 현역 시절 선수들 사이에서 주로 불리던 별명이다. 오픈 코트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나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종종 언급하곤 한다.], GOAT 등으로 불리고, 한국에선 농구 황제, '그 분', 마 사장, 쪼잔왕, 미카엘 [[요르단]], 역사상 최고의 [[소인배]], 조틀딱, 신발 장수 아저씨[* 만화 [[달숙이]]에서 실명 그대로 등장하는데 첫 등장부터 신발을 팔고 있었다. 이외에도 지드래곤의 어느 한 팬이 리뷰하는 글에서 조던신은 외국인선수라고 조던을 부르는 짤방이 널리 퍼지는 바람에 그대로 신발장수 별명이 굳어져버렸다.] 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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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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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등번호는 '''23'''번.[* 조던은 그의 형 래리 조던과의 1:1 농구 시합에서 항상 이겨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래리 조던의 학교 선수 시절 등 번호는 45번이었는데, 마이클은 형의 반만큼만이라도 농구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45번의 2분의 1인 23번을 선택한 것. 아래에 서술되지만, 1차 복귀 이후에는 잠시 45번을 달기도 했었으나, 그 시즌 도중에 23번으로 돌아갔다. 근데 막상 형 래리 조던은 엄청난 농구 실력에도 키가 173cm(5피트 8인치)에 그친 바람에 농구를 접어야 했다. 사실 조던 집안에선 178cm(5피트10인치)인 아버지 제임스가 그나마 큰 편일 정도로 어머니 들로리스와 5남매를 통틀어 180을 하나도 못 넘길 정도로 키가 작은 집안이다. 혼자 198cm(신발 신은 키)나 되는 마이클이 별종인 셈. 마이클의 장남 제프리는 185, 차남 마커스는 193 (둘 다 농구화 신은 신장)으로 그나마 큰 편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조던 집안의 최장신은 마이클 조던이다. 물론 둘째 아내 이베트 프리토와 2014년에 낳은 쌍둥이 딸들이 엄청난 장신이 되거나 자녀를 더 가진다면 모르지만...] 워낙 그가 유명해서 농구의 23번 하면 100% 조던. 농구가 아니더라도 조던 세대들은 숫자 23을 조던 넘버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예로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을 때, 그는 전 소속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부터 줄곧 사용한 등번호 7번을 선택할 수 없었다. 당시 7번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던 [[라울 곤살레스]]가 달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베컴은 7번 대신 조던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23번을 선택했다. 두 레전드의 선택을 받은 농구 외 스포츠에서도 상징적인 번호.] 농구인들끼리는 암묵적으로 23번이 축구에서 10번[* 10번은 [[펠레]] 이전에도 이미 중요한 번호였다. 원래 축구의 번호는 포지션을 의미했기 때문에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스트라이커의 10번은 애초에 가장 화려한 포지션이다. 펠레가 17살 어린나이에 브라질 대표팀의 10번을 받은 것은 어쩌다보니 우연히 받은 것이긴 하다. 우연히 10번을 단 어린 소년이 브라질 대표팀을 월드컵을 우승으로 이끌고 무려 3번이나 월드컵을 들어올린 후, 10번이 포지션 불문 에이스의 상징이 되버린 것이다. 그에 반면 농구의 23번은 정말 아무 의미없는 번호였다.]이 가지는 상징 그 이상으로 여겨지거나 아예 부담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 만큼 조던이 아무 의미 없던 특정 백넘버[* 현재까지 23번을 주로 달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는 조던 외에는 [[프랭크 램지]]와 캘빈 머피 뿐이며, 훗날 헌액이 사실상 확실시되는 [[르브론 제임스]]까지 해봐야 네 명이다. 게다가 램지는 50년대 선수였고 램지와 머피 둘 다 NBA를 주름잡던 선수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번호 자체의 상징성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오히려 NBA에서 전통적으로 레전드들이 많이 달았던 번호는 33번으로 [[카림 압둘 자바]], [[래리 버드]], [[패트릭 유잉]], [[알론조 모닝]], [[스카티 피펜]], [[그랜트 힐]] 등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달았고, 샤킬 오닐조차도 원래 아마추어 시절 33번을 달다가(유잉을 존경해서 선택한 번호이다.) 프로 입단 이후엔 33번을 누가 이미 달고 있어서 32번으로 바꿨다. 레이커스로 이적해서는 레전드 카림 압둘 자바 때문에 33번이 결번되어 있어 34번을 선택했는데 34번 역시 결번되었다.]에 이 정도 의미를 부여했을 정도로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의 시그니처 농구화로는 [[에어 조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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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NBA]]를 비롯하여 역대 최고의 농구 선수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슈퍼 스타로'''[* 이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2K게임즈에서 제작한 NBA 2K12에서는 전설의 농구선수 18명의 팀을 플레이 하여 플레이한 선수들의 팀을 해금해서 그 팀과 선수들로 통상 경기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그레이티스트 모드가 있다. 여기서 버젓이 1번, 즉 맨 앞에 위치하고 계신다. 참고로 2번은 [[매직 존슨]], 3번은 [[래리 버드]]. 은퇴한지 20년이 다되어가고 그의 영향력을 직관이 아닌 매스컴으로만 접해온 한국 사람들도 이 정도인데 그의 영향력과 실력을 직접 본 미국인들의 조던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겠는가!][*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60103/962209|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선수]] 부문에서 1위라는 것이 그의 입지를 잘 말해준다. 참고로 2위는 [[베이브 루스]], 3위는 [[무하마드 알리]].] 농구 그 자체를 대표하는 선수. NBA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은 두 인물 중 하나로, 나머지 한 명이 커미셔너를 역임한 [[데이비드 스턴]]임을 감안할 때, 선수인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봐도 좋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농구 선수 역대 탑1이다. [*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그냥 길가다가 아무다 붙잡고 아는 농구선수 이름 하나만 말해보라고 한다고 생각해보자. 열에 아홉은, 아니 100명중에 95명 이상은 바로 조던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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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커미셔너 (총재)는 절대 권력자가 절대 아니라 실질적인 힘은 자금줄을 거머쥔 구단주들에게 있으며 총재는 이들의 동의 하에 임명된 월급쟁이 사장 정도 위치이다. 구단주는 총재의 해임을 위한 구단주 투표를 건의할 수 있는 반면, 총재는 구단주를 퇴출시킬 수 없고 구단주를 퇴출하려면 구단주 투표가 필요하다. 즉, 구단주들은 총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반면 총재는 구단주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실제 파워에서는 돈줄을 쥔 구단주들이 더 막강하다. 다만 구단주와 달리 총재는 NBA 자체의 룰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리그를 변화시키는 면에 있어선 당연히 영향력이 막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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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스턴은 84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30년간 장기집권하면서 드래프트 2라운드제(그 이전까지는 10몇개 라운드까지 있었으며 매년 바뀌었다), 드래프트 생중계(초창기엔 방송국에 돈까지 쥐어주면서 했다. 물론 지금은 광고료 받는다), NBA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공격농구와 공격수 보호를 위한 일련의 룰 개정 등 수많은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일반적인 총재보다 훨씬 막대한 영향력을 준 인물. 실제로 80년대에 드래프트 중계권도 못 팔고 결승도 녹화 중계되던 시절부터, 선수 연봉만 팀당 10억 달러 언저리를 (스턴 은퇴 당시 기준) 지출하는 거대 리그가 되기까스턴, 그리고 스포츠 사상 가장 마케팅 가치가 높은 존재 중 하나인 조던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었다. 물론 그 와중 사람 모두 너무 상업이라며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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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스턴은 84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30년간 장기집권하면서 드래프트 2라운드제(그 이전까지는 10몇개 라운드까지 있었으며 매년 바뀌었다), 드래프트 생중계(초창기엔 방송국에 돈까지 쥐어주면서 했다. 물론 지금은 광고료 받는다), NBA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공격농구와 공격수 보호를 위한 일련의 룰 개정 등 수많은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일반적인 총재보다 훨씬 막대한 영향력을 준 인물. 실제로 80년대에 드래프트 중계권도 못 팔고 결승도 녹화 중계되던 시절부터, 선수 연봉만 팀당 10억 달러 언저리를 (스턴 은퇴 당시 기준) 지출하는 거대 리그가 ㅋ미 천부적인 소질을 발휘, 결과으로 '''농구황제'''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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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NFL]]에 대적할 수 있는 스포츠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농구도 조던이 선수로서 뛰던 시절엔 그 관심도에서 밀리지 않았고, 그는 실질적으로 NBA라는 리그를 세계적인 리그로 만든 인물이다. 통산 게임당 득점이 30.1점으로 올 타임 1위에 자리잡고 있는 역대 최고의 스코어러였으며[* 워싱턴 복귀 이후 상당히 떨어진 수치이다. 그 전까지는 31.5득점.], 올해의 수비수 상을 수상받은 경력이 있을 정도로 수비력 역시 역대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거기에 계약서에 "상기에 명시된 경기 이외에 몇 경기를 그저 '''농구가 좋아서(for the love of the game)''' 돈을 받지 않고 뛰어줄 수도 있다"고 할 정도로 그야말로 '농구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리고 미디어에 자신을 포장할 줄도 알았으며, 이미지 메이킹에도 천부적인 소질을 발휘, 결과적으로 '''농구황제'''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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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은 매직 존슨, 래리 버드의 라이벌리 시대가 끝나가는 시기인 1990년 초에 최정상 자리를 차지하면서 자연스럽게 NBA 대표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고, 그 당시부터 위성 방송으로 라이브 경기를 세계에서 비교적 싼 값에 송출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나 스마트 기기들로 활발히 정보 교환이 되는 시기도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에 더욱 편리한 시대였기도 했다. 매직 존슨이나 [[줄리어스 어빙]] 같은 그 이전 세대의 NBA 간판 선수들과 비교해보면 시기적으로 굉장히 잘 타고났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기회를 잡은 건 온전히 그의 실력. 실제로 그 이전에 시대를 지배한 러셀과 체임벌린의 경우 서로 대등한 라이벌이었고, 70년대 최고 선수인 카림은 이때 우승이 한번에 불과하며, 매직과 버드도 실적은 매직이 좋지만 둘 역시 대등한 라이벌이었고, 2000년대에 두각을 나타낸 샤킬 오닐, 팀 던컨, 코비 브라이언트 역시 누가 압도적으로 최강이라고 할 정도는 아닌데 조던은 90년대 독보적인 원톱으로 나머지 슈퍼 스타들을 전부 콩라인으로 만들 정도였다. 팀성적 + 개인 성적의 조합으로 이처럼 압도적인 선수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인기 면에선 시대를 잘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실력 면에선 이미 역대 최고라 인정받는 마당에 딱히 태클을 걸 건덕지가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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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말하기가 좀 애매한 게, 조던 수준의 실력과 인기를 지닌 선수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기 때문에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매직, 버드나 어빙, 후대의 코비, 르브론 등이 최소한 리그 내에서 입지가 조던과 비슷한데 노출도의 차이로 조던이 압도적인 상품 가치를 갖게 되었다면 시대 차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들은 조던만큼의 입지를 가진 적이 없다. 특히 조던의 경우 현재 스타들에 비해 노출도에서 훨씬 떨어진다. 이득이 되는 건 오직 이미지 메이킹 하나 때문인데, 사실 조던은 본인의 소심하고 지독하기까지 한 승부 근성이 다 까발려진 이후인 2010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농구 선수들 중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밑의 기타 문단의 Harris Poll 참고). 또한 지금도 그가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걸 부인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종합해 보면 노출도 면에서 선배들보다 유리했을지는 모르나, 까놓고 말해 후배들보다 이득을 본 부분은 없다. 조던이 압도적인 농구 황제로 추앙받는건 르브론 등 다른 선수들보다 뛰어난 실력과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퇴 선수들은 현역 선수들에 비해 선수 평가에서 불리한 경우가 많은데 조던의 역대 1위 자리는 요지부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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