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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분류:김두한(야인시대)]][[분류:197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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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include(틀:관련 문서, 문서명1=1972년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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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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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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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nopad> [youtube(FTau3zpAtkQ, start=471, end=59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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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은 오랜 지병이었던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몬더그린]]으로 인해 '오렌지병'으로 들리기도 한다.] 향년 55세였고, [[박정희 정부|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또 한 번의 정권 연장을 위해 [[10월 유신|유신 헌법]]을 통과한 지 한 달 만이었다. 많은 인파가 몰린 그의 장례 행렬에는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도 그 뒤를 잇고 있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의 국가유공자 연금 전액을 매달 '삼애고아원'[* 1964년부터 서울시 부암동 빈민촌에서 삼애교회를 운영하던 종교인인 차남진(1915~1979) 목사의 부인인 유앵손(1922~2003) 사모가 1966년에 설립한 고아원으로, 설립 당시에는 시온고아원이었으나 1968년에 교회의 이름과 같은 삼애고아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이 해부터 김두한이 후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차남진 목사는 호남 쪽 보수 신앙의 대표적 인물로 호남에 뿌리를 둔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으며 하나님·자연·이웃을 세 번 사랑하라는 의미에서 교회명을 '삼애'라고 지었다.]이라는 곳에 기탁한 이유였다. 김두한. 그는 [[일제강점기|일제 말 우리가 주권을 잃었던 식민지 시절]]부터 [[미군정|해방 이후 좌우익의 대립]]에 이어서, [[자유당(1951년)|자유당]] 부패 정치와 [[5.16 군사정변|5.16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생에 온 몸을 다 던져 불의와 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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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최동열]]: 난 오랫동안 자네를 지켜봐온 사람일세. 자네는 자네답게 살았어. 조선의 주먹 황제답게 말이야. 늘 야인이었지만 용감하고 멋있게 살았어. 나름대로 자네의 역사를 가지고, 자네의 시대를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얘기야. 뭐랄까… [[제목 말하기|야인시대라고나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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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야인시대]]! 그렇다. 그것은 바로 그가 몸바쳐 살아왔던 이 나라 격동기의 또 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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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엔딩 [[나레이션(야인시대)|나레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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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최후를 관용구로 일컫는 날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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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김근육 시리즈]]에서는 [[1972년 후]] 밈으로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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