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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include(틀:제(육조) 칠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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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include(틀:양(육조) 칠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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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蕭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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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생몰년도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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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자(이름)|자]]는 공제(公濟), 동해군(東海郡) 난릉현(蘭陵縣) 중도리(中都里) 출신으로, [[소예(서진)|소예]]의 아들이며 [[서진]]의 회음현령(淮陰縣令)을 역임하였다. [[영가의 난]] 당시 강을 건너 아들 [[소할]]과 진릉군(晉陵郡) 무진현(武進縣) 동성리(東城里)로 이주하였으며 이후 북방인이 강의 왼쪽, 이주인이 본토에 정착한 뒤 남난릉군(南蘭陵郡)이라 하였다. 이후 소정의 자손들은 남난릉군의 관료 직위를 역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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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후에 증손 [[소도성]]이 [[제(육조)|남제]]를 건국하자 [[시호]] '''회음부군(淮陰府君)'''으로 [[추존]]되어 제의 [[칠묘]]에 위패가 안치되었고, 현손 [[무제(양)|소연]]이 [[양(육조)|소량]]을 건국하자 '''황조회음부군(皇祖淮陰府君)'''으로 재추존되어 양의 [[칠묘]]에도 위패가 안치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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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그의 아버지는 [[소표]]로 생전 [[서진]]의 광릉군승(廣陵郡丞)을 역임하였고 남제가 건국되자 광릉부군(廣陵府君)으로 추존되어 남제의 칠묘에 배향되었다. 소정에겐 세 아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각각 이름은 [[소준(동진)|소준]], [[소할]], 소열(蕭烈)로, 소준은 동진의 즉구현령(即丘縣令)를 지냈고 남제가 건국되자 즉구부군(卽丘府君)으로 추존되어 남제의 칠묘에 봉안되었다. 소할은 동진 시기 남난릉군(南蘭陵郡)의 제음군태수(濟陰郡太守)를 지냈으며 소량이 건국되자 황고조제음부군(皇高祖濟陰府君)으로 추존되어 양의 칠묘에 봉안되었다. 소열(蕭烈)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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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분류:서진의 인물]][[분류:칠묘 배향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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