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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분류:동로마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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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include(틀:로마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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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9F0807><tablebgcolor=#9F0807> '''{{{#FCE774 바실리오스 2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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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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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include(틀:Skai TV 선정 위대한 그리스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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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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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2><tablealign=right><tablewidth=420><tablebordercolor=#9F0807><tablebgcolor=#fff,#1f2023><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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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로마 제국 제96대 황제[br]{{{+1 바실리오스 2세}}}[br]Βασίλειος 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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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2><bgcolor=#FFF,#FCE774><nopad>[[파일:1000000161.webp|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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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width=100> '''이름''' ||바실리오스 2세[br]Βασίλειος 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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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 '''이명''' ||바실리오스 2세 마케돈 불가록토노스[* [[불가리아인]]의 학살자][br]Βασίλειος Β' Μακεδών Βουλγαροκτόνος[br]'''[[불가리아인]]의 학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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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2> '''출생''' ||958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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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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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2> '''사망''' ||1025년 12월 15일 (향년 67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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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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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2> '''재위 기간''' ||<bgcolor=#f0f0f0,#2d2f34>{{{#000,#fff 로마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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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976년]] [[1월 10일]] ~ [[1025년]] [[12월 15일]] '''(49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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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 '''전임자''' ||[[요안니스 1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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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 '''후임자''' ||[[콘스탄티노스 8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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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 '''부모''' ||[[아버지|부황]] : [[로마노스 2세]][br][[어머니|모후]] : [[테오파노(10세기)|테오파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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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 '''종교''' ||[[정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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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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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clearfi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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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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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 ἄλλοι μὲν ἄλλῃ τῶν πάλαι βασιλέω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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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 다른 옛 황제들은 각기 다른 곳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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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 αὑτοῖς προαφώρισαν εἰς ταφὴν τόπου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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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 자신들을 위한 무덤을 미리 정했으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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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 ἐγὼ δὲ Βασίλειος, πορφύρας γόνο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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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 그러나 나는 바실리오스, 황족의 후예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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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 ἵστημι τύμβον ἐν τόπῳ γῆς Ἑβδόμο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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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 이곳, 앱도몬 땅에 내 무덤을 세우노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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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 καὶ σαββατίζω τῶν ἀμετρήτων πόνω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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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 그리고 이제 끝없는 고난에서 쉬려 하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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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 οὓς ἐν μάχαις ἔστεργον, οὓς ἐκαρτέρου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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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 나는 전장에서 사랑하고 견뎌온 그 고난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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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 οὐ γάρ τις εἶδεν ἠρεμοῦν ἐμὸν δόρ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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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 내 창이 쉬는 것을 본 자는 없으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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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 ἀφ’ οὗ βασιλεὺς οὐρανῶν κέκληκέ μ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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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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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 αὐτοκράτορα γῆς, μέγαν βασιλέ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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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 이 땅의 황제, 위대한 왕으로 삼으신 후부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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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 ἀλλ’ ἀγρυπνῶν ἅπαντα τὸν ζωῆς χρόνο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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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 나는 생애 내내 깨어 있었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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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 Ῥώμης τὰ τέκνα τῆς Νέας ἐρυόμη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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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 새로운 로마의 자손들을 보호하였노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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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 ὁτὲ στρατεύων ἀνδρικῶς πρὸς ἑσπέρα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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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 때로는 서쪽으로 용맹하게 원정을 떠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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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 ὁτὲ πρὸς αὐτοὺς τοὺς ὅρους τοὺς τῆς ἕ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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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 때로는 동쪽의 국경으로 향했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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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 ἱστῶν τρόπαια πανταχοῦ γῆς μυρί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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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 세상의 곳곳에 수많은 승전비를 세웠노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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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 καὶ μαρτυροῦσι τοῦτο Πέρσαι καὶ Σκύθα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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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 이에 대해 페르시아인과 스키타이인이 증언하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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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 σὺν οἷς Ἀβασγός, Ἰσμαήλ, Ἄραψ, Ἴβη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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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 아바스고스, 이스마일, 아랍인, 이베리아인도 함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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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 καὶ νῦν ὁρῶν, ἄνθρωπε, τόνδε τὸν τάφο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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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 || 그러니 이제, 이 무덤을 바라보는 자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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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 || εὐχαῖς ἀμείβου τὰς ἐμὰς στρατηγία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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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 나의 전쟁과 원정을 기도로 기억하고 감사하라.[* 기억하고 감사의 기도라도 올려주지 않겠는가?라고 번역된 내용이 있지만 실제로는 명령어, 즉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되어있다. 이는 즉 바실리오스 황제 스스로도 자신의 업적에 대한 큰 자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뜻을 존중해 이 번역에서는 해당 내용처럼 번역하였다.][* 그리고 유추되는 황제의 성격상 자신이 로마인을 위해 이뤄놓은 업적을 생각해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절대 부탁할 사람은 아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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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개요에 바실리오스 2세의 묘비문을 올린 것은, 이 묘비문이야말로 황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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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바실리오스 2세는 [[로마 제국]]의 황제로, 976년부터 1025년까지 제위를 지냈다. 그는 강력한 군사 지도력과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안정을 유지했다. 특히 불가리아 제국을 정복한 업적으로 인해 불가리아인의 학살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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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 그는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으며, 제국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서쪽에서는 불가리아를 정복하고, 동쪽에서는 아랍 세력과 투르크족의 침입을 막아냈다. 또한, 내정에서도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고, 귀족들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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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그의 치세 동안 [[동로마 제국]]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절정에 올랐으며, 그가 사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업적은 회자되었다.[* 그의 업적이 오래도록 회자된 이유는 바실리우스 2세의 사후 얼마 안되어 로마 제국 역사상 최악의 패배인 만지케르트 전투를 겪었고 이 후 소아시아를 상실하는 등 로마인들은 최악의 시기를 인내해야 했기 때문이다.]바실리오스 2세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황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끝없는 싸움을 선택한 자였다. 그의 삶을 잘 보여주는 묘비문은, 그가 마지막까지 검과 창을 놓지 않았던 황제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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