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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분류:룩셈부르크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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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include(틀:상위 문서, top1=룩셈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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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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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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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룩셈부르크]]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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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 고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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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고대에는 켈트계 민족인 갈리아인이 거주하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에 정복되면서 로마령 갈리아 속주의 일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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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 중근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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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 중세 초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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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중세 초기 룩셈부르크는 [[프랑크 왕국]]과 그 후신인 [[중프랑크 왕국]], 로타링기아 왕국 등의 지배를 받다가 [[신성 로마 제국]]의 구성국인 니더로트링겐 공국에 속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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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 룩셈부르크 백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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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지크프리트라는 이름의 [[귀족]]이 [[백작]]을 칭하고 통치하면서 '''룩셈부르크 백국'''이 형성되었고, 해당 인물을 시조로 하는 가문은 '''룩셈부르크 가문'''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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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초기 룩셈부르크 가문은 한미한 백작가에 불과했으나 룩셈부르크 백작 하인리히 7세가 대귀족들의 합의를 통해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7세로 선출되면서[* 백작으로서의 넘버링과 황제로서의 넘버링이 우연히 둘다 '하인리히 7세'로 겹쳤다.] 명문가로 부상했고, 하인리히 7세의 아들인 요한은 보헤미아 국왕 얀 루쳄부르스키로 즉위하면서 보헤미아 왕국[* 지금의 [[체코]].]까지 차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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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 룩셈부르크 공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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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룩셈부르크 가문이 [[신성 로마 제국]] 황실 및 보헤미아 왕실로서의 입지를 확보하자 그 발상지인 룩셈부르크 백국 역시 공국으로 승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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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다만 룩셈부르크 가문의 수장들은 황제 선거권을 가진 [[선제후]]인 보헤미아의 가치에 주목하여 보헤미아로 근거지를 옮겼기에, 룩셈부르크 가문이 가진 높은 위상에도 불구하고 룩셈부르크 공국이 제국 내에서 가진 입지는 백국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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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룩셈부르크 가문이 단절된 이후에는 여러 가문이 룩셈부르크 공작위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다가 16세기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이 룩셈부르크를 지배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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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 근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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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 [[프랑스]]의 지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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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프랑스 혁명 전쟁 당시 룩셈부르크 공국은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되어 [[나폴레옹]]이 멸망할 때까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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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 [[룩셈부르크 대공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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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 [[네덜란드]]의 지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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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1815년 빈 회의 결과 룩셈부르크는 다시 프랑스에서 분리되었는데, 전쟁 이전과 달리 [[합스부르크 가문]]이 아닌 네덜란드 왕가인 오라녀나사우 가문의 영지가 되어 [[네덜란드 국왕]]이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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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1831년 벨기에 독립전쟁 당시 룩셈부르크에서도 네덜란드 국왕의 지배에 반대하는 세력이 봉기하여 벨기에 뤽상부르 주로 떨어져 나갔지만, 수도 룩셈부르크 시를 비롯한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중심부는 계속 네덜란드와의 동군연합으로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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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의 통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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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1890년 네덜란드 국왕 빌럼 3세가 사망하자 네덜란드에서는 빌헬미나 여왕이 즉위했으나, 룩셈부르크는 [[여성]]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지 않는 살리카법이 적용되는 나라였기에 먼 친척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의 아돌프에게 룩셈부르크 대공위가 돌아갔고, 이로써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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