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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유래3. 여담

1. 개요[편집]

그림
무리

「범을 그리려다가 개가 된다」는 뜻으로, 함부로 호걸豪傑을 따르려다 보잘것없는 처지가 되기 쉽다는 의미이다.

2. 유래[편집]

杜季良豪俠好義憂人之憂樂人之樂清濁無所失父喪致客數郡畢至吾愛之重之不願汝曹效也... 效季良不得陷爲天下輕薄子所謂畫虎不成反類狗者也迄今季良尚未可知郡將下車輒切齒州郡以爲言吾常爲寒心是以不願子孫效也

두계량은 의협심이 있으며 사람들과 같이 걱정해주고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여 옳고 그름의 허물이 없어 부친상에 찾아온 문상객이 수많은 군에 이르니 내가 매우 사랑하고 중하게 여기나 너희가 본받기를 바라지 않는다.(중략) 두계량을 본받지 못하게 되면 천하의 경박한 자가 되어 무너질 것이니, 이른바 호랑이를 그리려다 이루지 못하고 어긋나기를 개가 되는 것과 같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두계량은 더욱 알지 못하겠으나 군장들은 그가 부임하면 번번히 분하여 이를 갈고, 주와 군은 상신하니 나는 가엾고 딱하여 너희가 본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후한後漢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은 교지交阯에 주둔하는 동안, 조카 마엄馬嚴과 마돈馬敦이 평소 비난하기를 좋아하고 경박한 협객과 어울리는 것을 훈계하는 편지를 보냈다.[2] 마원은 유협遊俠과 어울리는 조카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월기시마越騎司馬 두계량을 예로 들었다.[3] 마원은 두계량이 협객의 풍모로 높은 인망을 가졌지만 실상은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처지임을 주지主旨시키면서, 영웅의 풍재風裁를 본받아 그 길에 이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삶을 망치게 될 것을 경고했다.

3. 여담[편집]

  • 「고니를 새기려다 집오리가 된다」는 "각곡유목"과 유사한 형식을 가졌지만, 사람들에게 고니는 선망의 대상이고 집오리는 가계에 도움을 주기에 어느 것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반면 호랑이는 숭배와 토벌 두 가지의 대상으로서 협객이 자신과 부합하는 때를 읽어내고 매사를 정밀하게 판단해면 영웅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런 능력 없이 나선다면 남의 밑에서 연명하다 삶아먹히는 개처럼 퇴락하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 마원의 편지는 후대에 계형자엄돈서(誡兄子嚴敦書, 조카 엄과 돈에게 경계시키는 글)로 알려졌다.[4]
  • 마원이 우려한 조카들의 행동 가운데 '바른 규칙正法의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실정법에 시비를 따진다는 뜻으로 마원의 조카들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시국에 대해서 얘기했음을 가리킨다.[5] 당시는 군웅할거를 제압하고 한나라後漢를 복원한 광무제光武帝의 치세로서 영웅과 시국에 대한 담론은 제국에 대한 반감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었다.
  • 마원의 경고대로 두계량은 고발을 당해 벼슬을 잃었다.[6] 두계량이 면직되는 과정에서 그와 어울렸던 광무제의 부마駙馬 양송梁松과 두고竇固가 황제 앞에 불려가 크게 꾸지람을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광무제는 마원이 조카들에게 썼던 편지를 보이며 부마들을 책망했다.[7]
  • 마원은 일찌기 양송과 두고에게도 "귀한 신분일 수록 스스로를 단속해야 한다"는 취지의 충고를 했다.[8] 그러나 양송은 황제의 부마로서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면서 자신의 직위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 마원에게 앙심을 품었다.[9] 마원이 무릉군武陵郡에서 일어난 이민족의 난을 진압하지 못하자 이를 문책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양송은 그가 이미 진중에서 사망했음에도 구원舊怨을 잊지 않고 참소하였고 광무제는 마원에게 수여했던 제후의 직위를 박탈했다.[10] 이후 황제가 마원에 대한 참소를 모두 인용함으로써 조카 마엄을 비롯한 마원의 가족들을 포승줄에 묶인 채 광무제 앞에 끌려가 죄를 청해야 하였고, 마원의 빈객들은 변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혐의를 받고 물고物故를 당했다.[11]
  • 마원이 일찌기 외효隗囂를 섬길 때, 오랜 시간을 들여 광무제와 함께 할 것을 설득했는데 외효가 광무제와 한고조를 비교하면 어떠한가 묻자, 마원은 한고조에 대해서 '해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없다(無可無不可)'하였고, 광무제는 '정무를 즐기면서 행동은 절제하였다'며 "광무제는 한고조보다 못하다"고 답했다.[12] 마원은 당시 사신으로서 광무제를 만나 상호신뢰를 가졌고 그가 대세임을 파악하면서도 이면에 도사리는 냉혹함을 간파한 것으로 추정한다. 마원이 조카들에게 편지를 써서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할 것을 주문한 것도 단순한 훈계는 아니었다.
[1] 번역: 후한서 범엽 저, 진기황 역주, 명문당 2018[2] 後漢書 馬援列傳 第十四 「兄子嚴敦並喜譏議而通輕俠客援前在交阯還書誡之曰」[3] 앞의 출전 「季良名保京兆人時爲越騎司馬」[4] 誡兄子嚴敦書[5] 後漢書 馬援列傳 第十四 「妄是非正法」[6] 앞의 출전 「保仇人上書訟保... 罪詔免保官」[7] 앞의 출전 「保爲行浮薄亂群惑眾伏波將軍萬里還書以誡兄子而梁松竇固以之交結將扇其輕偽敗亂諸夏書奏帝召責松固以訟書及援誡書示之松固叩頭流血而得不罪」[8] 앞의 출전 「詔百官祖道援謂黃門郎梁松竇固曰凡人爲貴當使可賤如卿等欲不可復賤居高堅自持勉思鄙言」[9] 앞의 출전 「援嘗有疾梁松來候之獨拜床下援不答松去後諸子問曰梁伯孫帝婿貴重朝廷公卿已下莫不憚之大人奈何獨不爲禮援曰我乃松父友也雖貴何得失其序乎松由是恨之」[10] 앞의 출전 「帝乃使虎賁中郎將梁松乘驛責問援因代監軍會援病卒松宿懷不平遂因事陷之帝大怒追收援新息侯印綬」[11] 앞의 출전 「及卒後有上書譖之者以爲前所載還皆明珠文犀」, 「嚴與援妻子草索相連詣闕請罪」, 「有上書者以爲肅等受誅之家客因事生亂慮致貫高任章之變帝怒乃下郡縣收捕諸王賓客更相牽引死者以千數」[12] 앞의 출전 「隗囂與援共臥起問以東方流言及京師得失援説囂曰前到朝廷上引見數十每接宴語自夕至旦才明勇略非人敵也且開心見誠無所隱伏闊達多大節略與高帝同經學博覽政事文辯前世無比囂曰卿謂何如高帝援曰不如也高帝無可無不可今上好吏事動如節度又不喜飲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