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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 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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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심판 이전[편집]
2.1. 초기[편집]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을 바라보는 관점은 통합진보당 내란 선동 사건을 시작으로 진행된 2개월 간의 조사 결과 통합진보당은 종북 정당이며 북한의 대남 전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당사자 측에서는 '민주주의 파괴', '유신 독재의 부활' 등 정치적 탄압이라고 비난하면서 총력을 다해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내고 통진당 소속 의원 전원이 머리를 삭발하고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이에, 당사자 측에서는 '민주주의 파괴', '유신 독재의 부활' 등 정치적 탄압이라고 비난하면서 총력을 다해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내고 통진당 소속 의원 전원이 머리를 삭발하고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2.2. 2013년[편집]
2.2.1. 11월[편집]
2.2.1.1. 5일[편집]
그 날 아침, 정부서울청사에서 당시 국무총리였던 정홍원 주재로 국무회의가 열렸고,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이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심의 의결했다. 이후, 유럽 순방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전자 결재로 안건을 결재하였고 점심 때 황교안의 명의로 헌법재판소에 청구안이 제출되었다.
이후 청구안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됐고, 그 날 저녁, 당시 헌법재판소장을 맡았던 박한철은 미국에서 돌아온 후 회의를 열어 주심판관을 추첨 후 사건을 배정하기로 했다. 이 때에도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일반 사건과 동일한 절차를 준용하여 전자 추첨을 진행했고, 이정미가 추첨되었다.
이후 청구안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됐고, 그 날 저녁, 당시 헌법재판소장을 맡았던 박한철은 미국에서 돌아온 후 회의를 열어 주심판관을 추첨 후 사건을 배정하기로 했다. 이 때에도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일반 사건과 동일한 절차를 준용하여 전자 추첨을 진행했고, 이정미가 추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