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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신성 로마 제국의 군주.
800년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 또는 962년 오토 대제의 대관식으로 창설되었다가 1806년 제국 해체와 함께 폐지되었다.
800년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 또는 962년 오토 대제의 대관식으로 창설되었다가 1806년 제국 해체와 함께 폐지되었다.
2. 칭호[편집]
3. 선출 제도[편집]
카롤루스 대제의 제국은 세습군주제였으나 카롤루스 왕조의 단절 이후 오토 1세에 의해 재편된 제국은 선거로 왕을 선출하는 말기 동프랑크 왕국 및 독일 왕국의 제도를 계승한 선거군주제를 채탁하여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초기에는 독일 왕국의 다섯 부족 공작[1]이 황제를 선출했으나, 이후 부족 공국들이 여러 제후국으로 쪼개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하며 선제후 구성에 지속적인 변화가 있었고, 14세기 룩셈부르크 왕조의 카를 4세가 금인칙서를 반포하며 3명의 성직 선제후[2]와 4명의 세속 선제후[3]로 확정지었다.
17세기에는 기존의 세속 선제후 가운데 팔츠 선제후를 바이에른 선제후가 대체하고[4], 하노버 선제후가 새롭게 추가되는 변화가 있었다.
제국 해체 직전에는 나폴레옹의 압력에 의해 기존의 선제후들 가운데 성직 선제후들이 폐지되고 새로운 선제후들이 대거 추가되는 변화가 있었는데, 당시 황제였던 프란츠 2세가 사망하기도 전에 제국이 해체되어 그 선제후들이 황제 선거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초기에는 독일 왕국의 다섯 부족 공작[1]이 황제를 선출했으나, 이후 부족 공국들이 여러 제후국으로 쪼개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하며 선제후 구성에 지속적인 변화가 있었고, 14세기 룩셈부르크 왕조의 카를 4세가 금인칙서를 반포하며 3명의 성직 선제후[2]와 4명의 세속 선제후[3]로 확정지었다.
17세기에는 기존의 세속 선제후 가운데 팔츠 선제후를 바이에른 선제후가 대체하고[4], 하노버 선제후가 새롭게 추가되는 변화가 있었다.
제국 해체 직전에는 나폴레옹의 압력에 의해 기존의 선제후들 가운데 성직 선제후들이 폐지되고 새로운 선제후들이 대거 추가되는 변화가 있었는데, 당시 황제였던 프란츠 2세가 사망하기도 전에 제국이 해체되어 그 선제후들이 황제 선거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