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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샤워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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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타카라즈카 기념에 입장하는 라이스 샤워. 해당 경주에서의 사고로 사망했다.
이름
ライスシャワー
Rice Shower
출생
죽음
성별
수컷
털색
흑갈색 (黒鹿毛,쿠로카게)
아비
어미
라일락 포인트(ライラツクポイント)
외조부
생산자
유토피아 목장
마주
쿠리바야시 히데오
조교사
이즈카 요시지 (미호)
성적
25전 6승 (6-5-2-12)
총상금
7억 2949만 7200엔
주요
우승
G1
킷카상(1992)
천황상(봄)(1993, 1995)
G2
주요 수상
1995년 JRA상 특별상
레이팅
61(1992/1993)
상세 정보

1. 개요2. 혈통3. 생애
3.1. 1992년3.2. 1993년3.3. 1994년3.4. 1995년
4. 평가5. 여담6. 경주 성적7. 관련 문서8. 참고 자료

1. 개요[편집]

요도를 사랑한, 고고한 스테이어.
淀を愛した、孤高のステイヤー。
요도를 사랑한 스테이어
淀を愛したステイヤー
히어로 열전 No.65
메모리얼 히어로[2]
너의 장소, 너의 순간
君の場所、君の瞬間
나의 장소
2021년 명마의 초상
2024년 명마의 초상
거머쥔 3개의 훈장은,

요도의 언덕을 넘는, 가혹한 장거리가 무대였다.

야망을 피운 킷카상, 자신감이 가득했던 5세 봄의 천황상.

흑갈색의 사지(四肢)는, 모두 레코드 타임을 달렸다.

그리고 7세 봄의 방패.

고요함 속에 감추어진 뜨거운 마음,

이심전심이었던 마토바와의 호흡.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고고한 스테이어의 칭호는 너의 것이다.

JRA 히어로 열전
너의 장소, 너의 순간

자신의 강점을
무엇보다도 살릴 수 있는 것은
이곳이라 믿고 있는
무대에 선 그대여

타도해야 할 상대는 누구인가
똑바로 쳐다보며
승리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마음속에 그린 그대여

그 장소에서 피어라
그 한순간에 걸어라

JRA 명마의 초상[3]
나의 장소

자신에겐 적이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고자세로 활보하는 자들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위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려는 자들의
자신감과 야심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주위를 위축시키는 것으로
승리를 이끌어 내려는 것인가
그대의 정원이라면 상관없지만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나다
그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서는 나의 방식으로
일을 진행시켜주게
그대들은 나를 따를 수 밖에 없을걸세
정해진 룰에 저항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아니할지니

JRA 명마의 초상[4]

93년, 천황상 봄.
극한까지 깎아낸 몸에, 귀신이 깃든다.
왕자 메지로 맥퀸의 3연패를 저지한, 칠흑의 스테이어.
힐(악역)인가, 히어로(영웅)인가.
악몽인가, 기적인가.
그 말의 이름은...
라이스 샤워.
다음 전설을 보아라.

2012년 천황상 봄 CM



일본의 경주마. 간토의 명기수 마토바 히토시의 가장 특별한 친구. 별칭은 "간토의 자객", 혹은 "오니". 25전 6승으로 통산 전적은 뛰어나진 않지만, G1을 3회 우승하고, 킷카상천황상(봄)에서 신기록을 경신하는 등 다크호스로 주목받았다. 당대 최강이던 미호노 부르봉의 무패 3관을 저지하고, 사상 최초의 기록을 노리던 메지로 맥퀸천황상(봄) 3연패를 저지한 발군의 명마다. 그러나 관동과 관서의 대립이 한창이던 당시의 경마계에서 관서의 에이스를 두번이나 찌른 관동마 라이스 샤워에게 주어진 낙인은 '간토의 자객', '오니'라는 석연찮은 별칭이었다. 이 오명은 2년을 더 이어진 경주생활 끝에 비로소 해소되지만 동서의 에이스가 된 그 순간에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또한 '일본 경마 최후의 스테이어'라는 평가답게, 3000m 이상의 장거리 G1에서만 3전 3승을 거둔 경주마이기도 하다.

소개글

2. 혈통[편집]

1대
2대
3대
리얼 샤다이
Real Shadai
1979
파일:미국 국기.svg
로베르토
Roberto
1969
파일:미국 국기.svg
헤일 투 리즌
Hail to Reason
브래멀리아
Bramalea
데저트 빅슨
Desert Vixen
1970
파일:미국 국기.svg
데저트 트라이얼
Desert Trial
라일락 포인트
ライラツクポイント
1979
마루젠스키
マルゼンスキー
1974
니진스키
Nijinsky

Shill
쿠리 카츠라
クリカツラ
1962
티에폴로
Tiepolo
쿠리노 호시
クリノホシ
* -
노던 테이스트의 종마 대성공 이후 샤다이는 노던 테이스트-노던 댄서계의 짝으로 붙여줄 새로운 혈통을 물색했다. 그리고 노던 테이스트계에게선 부족한 강인한 힘을 지닌 헤일 투 리즌 - 로베트로계가 좋겠다는 생각으로 구입한 망아지가 라이스 샤워의 아비 리얼 샤다이다. 리얼 샤다이는 프랑스에서 8전 2승을 기록했으나 프랑스 더비 2착, 생클루 대상 3착, 개선문상 5착 등 괜찮은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일본에서 씨수말 활동을 시작. 93년 리딩 사이어를 기록할 정도로 성공했다. 이후 선데이 사일런스브라이언즈 타임 같은 헤일 투 리즌계 신규 종마와 그래스 원더타이키 셔틀 같은 다른 헤일 투 리즌계 외산마의 득세로 빠르게 힘을 잃긴 했지만, 이 두 말의 수입과 성공의 기반엔 헤일 투 리즌계의 선배인 리얼 샤다이의 활약이 있었다.

모마 라일락 포인트는 39전 4승을 기록했고 모계 3대조 쿠리노 호시는 1952년 사츠키상, 도쿄 우준에서 우승한 2관마 쿠리노 하나(クリノハナ)의 전형제 여동생이다.

3. 생애[편집]

라이스 샤워 열전 : 질주하는 말은 푸른 산의 혼이 되어[5]

이름 '라이스 샤워'는 서양의 그리스도교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버진 로드 퇴장을 마친 뒤 교회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두 사람의 가정에 축복하는 의미로 하객들이 쌀알을 뿌리는 의식을 의미한다. 힌두교식 결혼에서도 신부에게 쌀알을 뿌리는 의식이 있는데, 같은 표현을 쓴다.[6]

마루젠스키의 외손자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장거리 적성과 마루젠스키 특유의 스피드와 스퍼트 능력을 이어받고 산지가 많은 목장에서 자란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주행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산지의 경사에서 뛰놀던 경험은 훗날 교토 경기장의 고저차 4m의 언덕을 오르내릴 때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루젠스키가 일찍 은퇴해야 했던 원인이 된 약한 다리 또한 물려받았는데, 이는 후술할 비극적인 최후의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출처) 3세마 시절 나카야마 후요 스테이크스에서 이 부위에 처음 골절을 일으킨 이래로, 습관성 골절로 이어져 라이스 샤워의 마생 내내 따라다녔다.

3.1. 1992년[편집]

장거리 G1마 답지 않게 처음엔 중앙에서 단거리 신마전을 이기면서 통과를 하였다. 원래 라이스 샤워는 스프린터를 목표로 정하고 있었으나 이후 단거리 중상에서 11착으로 침몰하면서 이후 거리를 점점 늘어가며 성적이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1,600m OP에서 1착을 한 뒤 사츠키상에서 8착으로 침몰을 하였다. 물론 11번 인기였기 때문에 기대주는 절대 아니었다.

일본 더비에서 기대가 떨어지며 16번 인기라는 기대도 안됐던 대회에서 무려 2착이라는 이변을 일으키며 정배를 걸었던 사람들의 뒷통수를 완전히 깨트려버리는 뜬금없이 나타난 기대주로 부상한다. 이후 레거시 월드에 밀려 2착을 한번 더 하고 킷카상의 전초전이라고 할수 있는 교토신문배에서도 2착을 하였다. 이때부터 급부상하여 드디어 미호노 부르봉에 이어 2번 인기를 가져갔다.[7]

킷카상에서는 심볼리 루돌프 이래 첫 무패 클래식 삼관 달성을 노리던, 라이스 샤워의 커리어에서 G2 진출 이래로 단 두 번을 빼고는 항상 우승을 가져가던[8] 미호노 부르봉을 저지하고 승리했다. 이 때 당시의 어그로는 쿄에이 보우건이 주로 가져갔는데, 도주 위치에서 부르봉과 경합을 벌이느라 3000m는 처음이었던 부르봉의 페이스를 흔들었다는 비난을 들었기 때문이다.[9]
2번째 무패 삼관마 도전 미호노 부르봉 vs. 일본 더비에서 갑자기 급부상한 다크 호스 라이스 샤워(1992.11.08)
라이스 샤워에게 첫 G2 출전이자 우승 기회였던 스프링 스테이크스에서 4착을 할 때, 첫 G1 출전인 사츠키상에서 8착을 할 때, 1992년 일본 더비-세인트 라이트 기념-교토신문배 3연전에서 모두 부진할 때 이 중 일본 더비와 교토신문배에서 승리를 가져간 말이 바로 미호노 부르봉이었다.

3.2. 1993년[편집]

1993년 닛케이상 영상
일본 최초 단일대회 3연패 도전메지로 맥퀸 VS 라이스 샤워의 천황상 혈투(1993.04.25)
"관동의 자객, 라이스 샤워.
천황상(봄)에도 압도적인 인기였던 메지로 맥퀸을 깨트려버렸습니다"

"関東の刺客、ライスシャワー。
天皇賞でも圧倒的な人気のメジロマックイーンを破りました"

스기모토 키요시 아나운서, 1993년 천황상(봄) 우승 콜
그리고 이듬 해 천황상(봄)에서 일본 경마 역사상 최초 동일 G1 3연패에 도전하던 메지로 맥퀸을 상대로 통상적인 훈련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하에 전주 대비 12KG을 감량하는 극한의 조련을 실시, 이러한 훈련으로 레코드 타임으로 승리해 맥퀸의 3연패를 저지한다.[10] 이후 언론에 의해 '간토에서 온 자객'이니 '검은 헬멧'[11][12]이니 '레코드 브레이커'니 하는 식으로 묘사되었다. [13]

부르봉을 꺾었을 당시는 쿄에이 보우건이 어그로를 대신 가져가서 단순한 다크 호스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맥퀸을 자신의 힘으로 꺾은 뒤로는 맥퀸 팬들의 비난을 고스란히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부르봉을 상대로 이긴 것까지 안 좋은 의미로 재조명되어 버렸다. 간사이(릿토) 소속의 위대한 두 경주마를 상대로 그들의 홈그라운드인 요도(교토 경마장)에서 두 차례나 잔치상에 초를 친 간토(미호) 소속의 말이라, 간사이 지역의 경마 팬들에게는 실로 악역이나 다름없었다.

이외에도 나이스 네이처아리마 기념에서 4년 연속 3착 입상 기록 경신을 저지한 것도 라이스 샤워. 사실 이 때 나이스 네이처는 5착을 기록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라이스 샤워가 없었더라도 4착으로 기록 경신에 실패했겠지만, 절묘하게도 라이스 샤워가 3착을 해버리는 바람에 라이스 샤워의 레코드 브레이커 전설(?)이 유명해지는 데 큰 기여를 한 일화 중 하나가 되었다.

우마무스메 애니메이션 2기에서 차용된 이 CM에서도 라이스 샤워의 몸에 오니가 깃들었다거나 악역, 악몽이 언급되고 안광까지 서려있는 등 여전히 이미지가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천황상 승리 후 부진과 부상이 겹치며 이기지 못하는 나날이 거듭되었다. 올커머 3착-천황상(가을) 6착-재팬 컵 14착-아리마 기념 8착.

3.3. 1994년[편집]

1994년에는 교토기념 5착-닛케이상 2착. 이후 천황상(봄) 연패를 위해 조교하던 중 3세때 골절된 부위에 다시 부상을 입었다. 이 땐 은퇴를 고려했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어서 그대로 종마로의 길을 모색했으나, G1 2승이라는 경력이 있음에도 교배 의뢰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좋은 군마를 낳을 종마를 선별하는 것이 경마계의 주된 목표였던 과거와 달리 90년대의 경마계는 더 이상 천황상(봄)을 우승했다고 해서 편하게 은퇴를 시켜주지도 않았고, 군마를 고르던 경험에서 비롯된 스테이어에 대한 수요도 없어져서[14][15][16] 외면받게 된 것이다.

결국 종마로의 전환은 취소되었고, 생각보다 부상 회복이 빨라서 10월 말에 복귀했다. 그러나 복귀 후에도 연말 아리마 기념 3착-1995년 교토기념 6착-닛케이상 6착 등 부진한 성적이 계속되었다.

2년간의 부진의 원인으로 가장 큰 이유는 천황상 당시 지나치게 혹독한 조교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고, 추가로 미호노 부르봉, 메지로 파머에게 패배한 후 맹렬한 투지를 보여줬다는 일화가 있는데 부진의 원인중 하나로 이들을 꺾은 후의 목표로 삼아야 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3.4. 1995년[편집]

3.4.1. 천황상(봄)[편집]

1995년 천황상(봄) 영상
그러다 1995년 천황상(봄)에서 2년, 10전만에 첫 승리를 거두며 부활했다. 평소보다 페이스를 빨리 올려 4코너 직전에서 이미 선두를 차지하는 모습에 관계자들은 마크할 말 없이 잘 달릴 수 있을지, 폭주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였으나, 마토바 기수와 라이스는 홀로 선두에 서는 승부수를 띄워서 마신 차이를 벌린 후 물을 머금은 중(重)마장을 뚫고 마지막 펄롱을 버텨내며, 더 이상 남을 마크하는 것에만 의존하지 않고[17] 스스로의 힘만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사진 판정 끝에 달성한 10cm 차이의 신승이었다. 승리하던 당시 4번 인기였으며 1~3번 인기와 그렇게 배당률이 차이는 많이 안났고(3.5-5.4-5.5-5.8) 라이스 샤워도 사실상 정배였으나 3번 인기 이하였기에 역배가 이겼다는 반응이 많다.

세월이 흘러 맥퀸도, 부르봉도 현역에서 은퇴했던 시절이라, 2년 전에는 대놓고 부르봉과 맥퀸을 편들던 중계도[18] 부르봉과 맥퀸이 응원하고 있을 것이라며 격려한 뒤 라이스가 우승하자 부르봉과 맥퀸도 기뻐할 것이라며 축하했고[19][20], 야유를 퍼붓던 간사이 팬들조차 꿋꿋하게 버티며 부활한 과거의 악역에게 찬사를 보냈다.[21] 이는 데뷔 이래로 모두에게 멸시를 받으며 악역이어야만 했던 라이스 샤워가 그의 마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웅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3.4.2. 타카라즈카 기념[편집]

4. 평가[편집]

현역 시절 대부분을 악역으로 매도당하기 일쑤였지만 죽은 뒤에는 언론이 태도를 바꿔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는 식으로 보도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언론이 그냥 남들처럼 달렸을 뿐인 말을 악역으로 만들어 죽음으로 내몰고서는 뻔뻔하게 입을 씻는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22] 마토바 히토시 기수는 이후 그래스 원더의 기수가 되어 당대 최고의 인기였던 스페셜 위크를 이기며 언론으로부터 히트맨이라는 찬사를 받았는데 라이스 샤워의 비극을 겪은 이후 이런 언론의 행태에 학을 떼며 그 별명을 질색했다.

언론도, 팬들도 죽기 전까지 실컷 욕해놓곤 비극적으로 죽으니까 영웅 취급하며 띄워주는 꼬라지가 역겹다며 경마를 보지 않겠다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로 당시 라이스 샤워의 죽음이 가져온 파장은 굉장했다. 일단 언론도 나름 반성을 했는지, 라이스 샤워의 죽음 이후로 매스컴에서 특정 경주마를 공공연히 악역으로 모는 관행은 찾기 힘들어졌다.[23] 드라마틱한 마생과 동시대의 라이벌들, 그리고 G1 승리 레이스의 조건 편중 경향이 뒤섞여서 사람마다 평가가 바뀌는 기묘한 경주마이기도 하다.

5. 여담[편집]

악역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서러브레드 중에서는 드물게도 극히 온화하고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며 지시에 완벽하게 순응하는 영리하고 착한 말이었다고 한다. 두번째 천황상(봄) 제패 후 팬과 기자들이 찾아왔을 때 먼저 관심을 보이고 잘 어울려주었다고 하며, 심볼리 루돌프처럼 사진기가 어떤 물건인지 잘 알고 있어서 사진 찍기 좋은 포즈를 알아서 잡아줬다고 한다. 자기 사진을 보여주면 알아보고 기뻐했다고 한다. 다만 좀 어린애같은 성격도 있어서, 경기에 지고 오면 마방 구석에서 축 쳐져 있다거나, 반대로 칭찬하면 우쭐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말은 싫어하는 것이 보통인 게이트 입장도 문제 없이 해서 게이트 테스트를 한번에 통과하였고, 악벽도 없었으며[24] 훈련에도 충실하게 임하는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런 성격 때문에 무리한 훈련을 다 받아들이느라 몸이 망가져서 약 2년 동안 부진을 겪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는 의견도 있다. 그야말로 아이러니.[25]

간토 말이지만 3번의 G1 승리는 모두 교토 경마장에서 거둔 것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우승마의 마체중 킷카상 최저기록(438kg)과 천황상(봄) 최저기록(430kg-93년)을 가지고 있다. 1995년 천황상(봄) 우승 시는 4위(442kg)기록이다.

라이스 샤워의 시신은 그가 태어난 홋카이도 노보리베츠시의 유토피아 목장에 안장되었고, 묘비도 그곳에 있다. 라이스 샤워의 묘비는 2개인데, 두번째 묘비는 참배객을 맞이하는 용도로 안내되며, 경마꾼이 죽은 경주마의 묘비에서 돌을 떼어가 부적으로 삼는 등 묘비를 훼손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일부러 모서리를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 라이스 샤워가 실제로 묻혀있는 첫번째 묘비는 팬들에게 거의 공개되지 않으며 묘비의 크기도 작고 형태도 일반적이다.[26] 참조 글 2023년 재단장을 발표했다.

라이스 샤워의 어미 라일락 포인트는 라이스 샤워가 죽은 뒤에도 번식암말 생활을 계속하다가 1997년 막내이자 라이스의 전형제 여동생인 에버 스마일(エバースマイル)을 낳았다. 에버 스마일이 번식암말이 된 뒤 낳은 자식들인 라이스의 조카들은 외삼촌의 성적만큼도 내지 못한 채 경주마에서 은퇴하여 승용마 등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27]

라이스 샤워의 승부복은 40년대에 활동했던 명마 쿠리후지와 승부복이 동일하다. 라이스 샤워의 마주인 쿠리바야시 히데오는 쿠리후지의 마주인 쿠리바야시 토모지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말딸갤러가 정리한 라이스 샤워의 일대기. 무려 9편이나 이어지는 장문이지만 뛰어난 필력으로 한 마리의 말이 태어나고부터 죽기까지를 극적으로 묘사하여 많은 추천을 받았다. 라이스 샤워의 마생을 보다 상세히 알고 싶다면 참고할만 하다. 1 2 3 4 5 6 7 8 9.

6. 경주 성적[편집]

경주일
경마장
경기명
등급
트랙
배당
인기
착순
기수
1착마
(2착마)
1991년 (3세, 현 2세)
8.10
3세 신마
잔디 1000m
3.1
2
1착
미즈노 타카히로
(다이이치 리유몬)
9.1
GIII
잔디 1200m
4.3
3
11착
스가와라 야스오
유토 제인
9.21
후요(芙蓉) 스테이크스
OP
잔디 1600m
3.7
2
1착
미즈노 타카히로
(아라라트 산)
1992년 (4세, 현 3세)
3.29
GII
잔디 1800m
68.9
12
4착
4.19
GI
잔디 2000m
59.0
11
8착
5.10
GII
잔디 2000m
25.0
9
8착
나리타 타이세이
5.31
도쿄 우준 (일본 더비)
GI
잔디 2400m
114.1
16
2착
9.27
GII
잔디 2200m
6.5
3
2착
10.18
GII
잔디 2200m
7.1
2
2착
11.8
GI
잔디 3000m
7.3
2
1착[R1]
12.27
GI
잔디 2500m
4.9
2
8착
1993년 (5세, 현 4세)
2.21
GII
잔디 2500m
3.5
2
2착
3.21
GII
잔디 2500m
1.8
1
1착
(이탈리안 컬러)
4.25
GI
잔디 3200m
5.2
2
1착[R2]
9.19
GIII
잔디 2200m
1.8
1
3착
10.31
GI
잔디 2000m
3.0
1
6착
11.28
GI국제
잔디 2400m
12.8
7
14착
12.26
GI
잔디 2500m
10.9
5
8착
1994년 (6세, 현 5세)
2.13
GII
잔디 2200m
6.6
2
5착
3.20
GII
잔디 2500m
4.1
2
2착
스테이지 챔프
12.25
GI
잔디 2500m
17.7
4
3착
1995년 (7세, 현 6세)
2.12
GII
잔디 2200m
2.7
1
6착
와코 치카코
3.19
GII
잔디 2500m
4.1
1
6착
인터 라이너
4.23
GI
잔디 3200m
5.8
4
1착
(스테이지 챔프)
6.4
GI
잔디 2200m
6.0
3
중지[30]

7. 관련 문서[편집]

8. 참고 자료[편집]


[1] 당시 일본 JRA 나이 역산법으로는 7세.[2] 2023년 11월 JRA 70주년 기념으로 각 G1 레이스별 대표 경주마를 팬투표로 결정 한 후 2024년 기존 명마의 초상을 대체하는 기획 프로그램이다. 중복으로 1위에 뽑힌 경주마는 가장 투표가 높았던 레이스 대표가 되고 그렇게 투표 상위가 빠진 레이스에는 차등 경주마가 대표가 된다.[3] 2021년 천황상(봄) 기념[4] 2024년 천황상(봄) 기념[5] 출생부터 죽음까지 라이스 샤워의 마생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글.[6] 헌데 여담이지만 재미있게도 한국에는 실제로 말을 쌀로 씻겼던 전승이 내려오는 지역이 있다. 물론 진짜 위생 목적으로 씻긴것이 아니라 임진왜란때 물이 부족한 걸 속이려고 쌀로 말을 씻기며 기만책을 썼었던 것이지만.1호선 세마역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는 당시의 전승이 이름으로 남은 곳들이다.[7] 2400미터 조차 짧다는 평가를 들었던 라이스 샤워가 더비에서 2착을 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92년도 클래식 세대는 장거리와 단거리는 강하지만 중거리는 약했던 세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8] 라이스 샤워는 킷카상 전까지 미호노 부르봉과 4번의 대결에서 모두 완패했지만, 그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9] 물론 어디까지나 당시의 무패 3관이 좌절됨에 따른 분노와 라이스 샤워에게 스테이어라는 인식이 없던 때이기에 생긴 감정적인 여론일 뿐이다. 쿄에이 보우건의 도주로 페이스가 어지럽혀진것은 미호노 부르봉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였다.[10] 2021년 현재까지 일본 경마의 주요 코스인 잔디에서 동일 G1 3연패를 달성한 말은 아직 없다. 훗날 맥퀸의 외손자인 골드 쉽이 G2인 한신대상전을 3연패 했고, G1 그랑프리인 타카라즈카 기념 3연패를 달성할 뻔 했지만 특유의 기성난 때문에 이루지 못했다. 다만 더트와 장애물은 이미 G1(Jpn1) 3연패를 달성한 말이 나왔다.[11] 그냥 단순히 순번이 2번조여서 기수의 헬멧이 검은 것일 뿐인데도, 스기모토 해설의 언급처럼 맥퀸의 흰색 마체와 대비시키며 기수에게까지 어둡다는 이미지를 덮어 씌운 것이다. 이는 관동, 관서의 지역 감정도 영향을 끼쳤고 마토바 기수도 항의 할 정도로 빌런 이미지가 강했다.[12] 우연찮게도 라이스의 기수였던 마토바 히토시는 여러 레이스에서 유력한 후보들을 제치고 우승한 전적이 다수 있어(라이스 샤워 포함) '히트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13] 우마무스메에서 입고 있는 검은색 승부복과 스킬이 발동되었을 때의 모습도 이 자객의 이미지에서 착안된 것이나, 사실 우마무스메와 실제의 라이스 샤워의 취급은 조금 다르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일본의 경마팬에 따르면 실제로는 우마무스메에 묘사된 수준은 절대 아니었으며, 라이스 샤워가 맥퀸을 이길때 평범하게 환호하던 사람도 매우 많았다고 한다. 2번 인기였던만큼 승리를 바랬던 사람들도 그만큼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14] 천황상에서 우승한 말이 당대 최고로 인정받아 다음 천황상에 출주할 수 없는 전통이 없어진 것은 이미 십수년 전인 81년, 천황상(가을)이 3200m에서 2000m로 거리가 변경된 것은 83년이었다. 장거리 경마의 흥행 침체는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현재진행형이다.[15] 참고로 영국의 경우 클래식 삼관 경주인 2000 기니 스테이크스더비 스테이크스를 승리하여 2관마가 되더라도 마지막 경주인 세인트 레저 스테이크스는 초장거리니까 출주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일 정도다. 참고로 1970년에 삼관을 달성한 현시점 영국의 마지막 삼관마인 니진스키 이후 2관마가 세인트 레저에 출주한 경우는 2022년 기준 단 한 번(몬쥬의 자마 카멜롯. 결과는 2착. '부르봉'당했다) 뿐이다. [16] 사실 니진스키조차도 그 당시에 세인트 레저 출주를 선언하자 로테이션 관련으로 말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세인트 레저 스테이크스를 뛴 여파로 개선문상을 승리하지 못했다.[17] 2착으로 들어온 스테이지 챔프는 바깥으로 멀리 돌아서 들어온 것을 볼 수 있는데, 근거리에서 경합 도중 라이스 샤워 특유의 경쟁심이 발동되는 상황을 피하려는 전술이었다. 공교롭게도 2착을 차지한 스테이지 챔프 또한 부마가 같은 리얼 샤다이다.[18] 위의 천황상 경기만 봐도 스기모토 중계는 경기 시작전부터 마지막 직선까지 대놓고 맥퀸을 응원하는 멘트를 했고, 라이스에게는 무시무시한(こわい), 엄습합니다(襲い掛かります)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악역으로 매도했으며, 레코드 타임까지 깨며 우승했을 때도 그다지 좋은 말을 해주지 않았다.[19] 팬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말을 꺾은 말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납득이 간다는 이유이다. 이는 슈퍼 크릭 진영이 자신들의 연도대표마 기회를 희생하고 타케 유타카에게 오구리 캡에 기승하라고 권한 이유와 동일하다.[20] 중계진이었던 스기모토 아나운서는 1993년 천황상 (봄) 경기때와는 반대로 라이스 샤워와 스테이지 챔프의 1착 사진 판정이 진행되는 동안 라이스 샤워가 패배하지 않을지 우려하는 티가 역력했고 포스트 통과 당시 비디오 스틸로도 판정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우열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중계진에서는 라이스 샤워가 유리한걸로 보였다며 라이스 샤워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라이스 샤워의 우승이 확정됐을 때 다행히 라이스 샤워가 우승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21] 마토바 히토시 기수는 1995년 천황상 (봄)을 우승했어도 1993년 당시의 경기 후 반응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어서 당연히 그 악역이었던 라이스 샤워가 메지로 맥퀸의 3연패를 저지한 그 대회를 다시 우승했기에 관서의 관중들이 또 다시 라이스 샤워를 향해 비난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골 이후에도 기쁜 내색 없이 무표정으로 일괄하고 빠르게 퇴장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2년 전과는 달리, 관중들의 비난이 아닌 환호가 이어지고 심지어 일부 관중석의 관중들이 경기를 마친 뒤 마토바 기수와 라이스 샤워를 향해 마토바 콜을 외치자 그제서야 긴장을 풀며 미소를 보였다. 위 영상에서 마토바 콜을 가장 크게 외친 관중은 라이스 샤워가 3코너를 지나는 시점에서부터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있었는데, 이런 열성팬이 생겼다는 점에서 라이스 샤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22] 그러나 이런 여론이 의외로 순기능이 된 적도 있었는데 바로 1992년 킷카상 때 미호노 부르봉의 3관을 좌절시키는데 한 축을 담당했던 말 쿄에이 보우건이 은퇴 후 도축의 위기에서 벗어나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데에 일조했다는 점이다. 경주 성적도 좋지않고 혈통도 미미해 은퇴 후 도축될 위기에서 해당 말의 팬이었던 주부 마츠모토 카오리가 이를 막기위해 자비를 털어 쿄에이 보우건을 구입했으나 이후의 말 생활 자금을 대는 데 어려움을 겪고있는 와중 1995년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라이스 샤워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자 1992년 킷카상 때 미호노 부르봉을 응원했던 팬들 일부는 당시 라이스 샤워가 미호노 부르봉을 이겼던 건 실력이었는데 애꿏은 라이스 샤워와 쿄에이 보우건을 욕해서 미안하다며 기부금을 쾌척했었다. 이로 인해 쿄에이 보우건은 걱정없이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된다.[23] 공식적으론 그렇긴 한데, 경기 외적 혹은 내적인 이유로 인해 팬들 혹은 관계자에게 빌런 취급당하는 말은 라이스 샤워 이후로도 적잖이 나온다.[24] 이케조에 켄이치의 사례를 보면 악벽이 있는 말을 다룰 때 기수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볼 수 있다.[25] 공교롭게도 이와 같이 지극히 온순하고 착한 성격이었다는 점은 당대 라이벌이었던 미호노 부르봉도 마찬가지였고, 그로 인해 무리한 훈련을 전부 받아들인 나머지 몸이 망가졌다는 점도 동일하다. 그나마 부르봉의 경우 은퇴가 빨랐지만 안락사까지 갈 정도의 치명상은 아니었고 은퇴 후에도 비교적 장수했으니 다행인 부분이다.[26] 유명 경주마의 묘는 경마꾼이 관심을 갖지 않도록 일부러 작고 단촐하게 조성하는 경향이 있다. 미스터 시비, 마루젠스키의 묘가 이런 단촐한 형태이다.[27] 에버 스마일의 자식들 중 번식암말이 된 것도 아그네스 디지털의 딸인 해피 라일락(ハッピーライラック)뿐이었고, 해피 라일락은 아들 골드 수츠(ゴールドスーツ) 한 마리만 낳고 죽었다. 골드 수츠는 지방경마에서 뛰다가 2020년 은퇴하고 그 직후 장염전으로 죽어 현역인 라일락 포인트의 후손은 없다.[R1] 3:05.0[R2] 3:17.1[30] 부상으로 인한 경주 중단. 中으로도 표기하며, 넷케이바 영어판에서는 DNF로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