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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독일의 춘계 공세는 1918년 3월 21일부터 7월 18일까지 서부 전선에서 독일 제국군이 감행한 일련의 대규모 공세를 의미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독일군은 서부 전선에서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고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마지막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소비에트 러시아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면서 동부 전선에서 철수하자, 독일군은 서부 전선으로 병력을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전하면서 연합군의 병력과 자원이 크게 증가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독일군이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따라 독일군 총사령관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서부 전선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연합군과 유리한 조건으로 평화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대규모 공세를 계획하였다.

1918년 3월 21일, 독일군은 "미하엘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춘계 공세의 첫 번째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 작전은 영국군이 방어하는 솜 강 전선에서 시작되었으며, 독일군은 새로운 전술인 "돌격 보병 전술"을 활용하여 참호전의 교착 상태를 깨뜨리려 하였다. 초기 공격에서 독일군은 상당한 전과를 거두며 영국군을 후퇴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연합군은 빠르게 방어선을 재정비하고 반격을 감행하였다.

이후 독일군은 4월과 5월에도 "조르주 작전", "블뤼허-요르크 작전" 등의 추가적인 공세를 감행하며 프랑스군을 압박하였고, 마른 강 유역까지 진출하여 파리를 위협하였다. 그러나 연합군은 조직적인 방어와 병력 보강을 통해 독일군의 공세를 저지하였으며, 7월 18일부터 프랑스군과 미국 원정군이 대규모 반격을 개시하면서 독일군은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독일의 춘계 공세는 초기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연합군의 조직적인 저항과 병력 보충으로 인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 공세로 인해 독일군은 막대한 병력과 자원을 소모하였고, 이후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독일군은 방어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으며, 연합군의 100일 공세가 시작되면서 전쟁의 흐름은 결정적으로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바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