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錦 | 衣 | 還 | 鄕 |
비단 금 | 옷 의 | 돌아올 환 | 시골 향 |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출세를 하거나 크게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옴을 가리킨다.
2. 유래[편집]
人或說項王曰關中阻山河四塞地肥饒可都以霸項王見秦宮皆以燒殘破又心懷思欲東歸曰富貴不歸故鄉如衣繡夜行誰知之者
어떤 사람이 항왕에게 권하기를 "관중關中은 사방이 산하로 막혀 있고 땅이 비옥하니 도읍으로 삼아 패왕霸王이 될만한 곳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항왕은 진의 궁실이 이미 불에 다 타버렸고, 또 마음속으로 고향이 그리워서 동쪽으로 돌아가려고 하며 말하기를 "부귀한 뒤에 고향에 돌아가지 아니하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와 같으니 누가 그것을 알아주리오?"라고 하였다.
통상의 출전으로 인용되는 항우본기에는 '귀고향...의수야행歸故鄉... 衣繡夜行'으로 기록되어 있어 일치하지 않는다. 남북조시대의 사서인 양서梁書 유경원柳慶遠의 열전에서 양나라 무제武帝가 옹주자사로 부임한 유경원을 배웅하면서 건낸 말에서 유사한 표현 「卿衣錦還鄉」이 등장하며, 더 정확한 표현은 원나라 문헌 낭현기瑯嬛記에 진나라秦의 농부로서 고위관직에 올랐다는 장인張璘의 이야기 「使得錦衣還鄕足矣」에서 나타난다.[2][3] 그러나 양서와 낭현기는 널리 알려진 출전이 아닌데다 항우의 언설言說 속에 금의환향의 뜻이 포함된 까닭에 일반적으로 항우본기를 출전으로 삼고 있다.
3. 여담[편집]
- 항우는 천하 경략을 위한 계책을 듣고도 스스로 편하고 걱정 없는 곳에서 웅거雄據하기를 택함으로써 치국의 지도자에 미달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관료로 임한 사람들에게 비단 옷을 입고 고향에 가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기에 유사한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 고래古來의 문헌에서 비단 옷을 입고 고향으로 가는 표현은 돌아온다는 '還'보다는 돌아간다는 의미의 『歸』와 시골을 뜻하는 '鄕'보다는 태어나 자란 곳을 뜻하는 『故里』를 조합하여 사용하거나, 이를 축약한 『錦衣歸』를 주로 사용했다.錦衣歸故里薄官試鹽鐡
雙溪醉隱集 卷二 送胡夀卿南歸王為錦衣歸故里遂令老樹有稱呼
列朝詩集 甲集前編第七 臨安訪古 九首 將軍樹假饒一舉登科日難道是雙親未老時只恐錦衣歸故里雙親的不見兒又云如今端的是男兒行看錦衣歸故里皆用此詩
通俗編 卷五 仁進 【一舉登科日,雙親未老時】報導錦衣歸故里爭誇白屋出公卿
今古奇觀 第一卷 三孝廉讓產立高名這番也算是錦衣歸故里行色甚壯自不必說
快士傳 第四卷 慣負人俗子誤身謀 不忘生英雄償死債蜀人有詩贈曰昔日騎驢學忍饑今朝忽著錦衣歸
鑑誡錄 卷八余舊記一小詩云京師素號酒色海溺者常多濟者稀吾子堂前有慈母布衣須換錦衣歸
苕溪漁隱叢話 前集卷二十七休悒怏莫嗟籲白衣換卻錦衣歸
荊釵記 第十六齣赴試 【甘州歌】錦衣歸稚子洗耳聽鳴珂
欽定古今圖書集成 博物彙編 第一百九十四卷 【竹坡】
[1] 번역 사기본기 사마천 저, 정범진 외 역, 까치글방, 2014[2] 梁書 卷九 列傳第三 王茂 曹景宗 柳慶遠 「謂曰卿衣錦還鄉朕無西顧之憂矣」[3] 瑯嬛記 卷中 張璘 「璘曰臣少貧賤恒爲鄕里所戮笑幸遇陛下官爲上卿實非所冀有如藉陛下神靈使得錦衣還鄕足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