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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유래3. 여담

1. 개요[편집]

사나울

「사나운 개로 인하여 술이 시금해 진다」는 뜻으로, 기득권 세력의 방해로 인해 인재가 오지 않음을 가리킨다.

2. 유래[편집]

宋人有酤酒者升概甚平遇客甚謹爲酒甚美縣幟甚高著然不售酒酸怪其故問其所知問長者楊倩倩曰汝狗猛耶曰狗猛則酒何故而不售曰人畏焉或令孺子懷錢挈壺罋而往酤而狗迓而齕之此酒所以酸而不售也夫國亦有狗有道之士懷其術而欲以明萬乘之主大臣爲猛狗迎而齕之此人主之所以蔽脅而有道之士所以不用也

송나라 사람 중에 술을 파는 사람이 있어서 술을 되는 양이 매우 공평하고 손님을 맞는 태도가 매우 공근하며, 빚은 술의 맛이 매우 좋고 술집을 알리는 깃발를 높게 달았다. 그런데도 팔리지 않아 술이 쉬어버렸다. 그 까닭을 괴이하게 여겨 그가 잘 아는 마을 어른인 양천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양천이 “너의 집 개가 사나우냐?”라고 묻자 답하기를 “개가 사나우면 술이 무슨 까닭으로 팔리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양천이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어린아이를 시켜 가슴에 돈을 품고 술병을 가지고 가서 술을 사오도록 했을 적에, 사나운 개가 맞서면서 물기도 하니 이것이 술이 쉬도록 팔리지 않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나라에도 이런 사나운 개가 있으니 도리을 갖춘 선비가 재주를 품고 만승의 군주에게 이를 분명하게 밝히려고 해도 대신들이 사나운 개처럼 맞서면서 물어버리니, 이것이 군주는 가려지고 협박을 당하는 원인이며, 도리를 갖춘 선비가 중용되지 못하는 원인이다.

술집 주인은 손님을 성심껏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자신이 데리고 있는 개가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임을 알지 못했다. 한비자는 선비가 경세經世의 이치를 군주에게 가르쳐 개혁을 이루려 해도 군주의 주변을 장악한 기득권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을 이와 같이 서술했다.

출전은 이어서 제나라 환공齊桓公과 관중管仲의 대화를 통해서 "대신은 사나운 개가 되어 도리를 갖춘 선비를 물어뜯고, (군주의) 좌우는 사직단社稷壇에 숨은 쥐가 되어 군주의 실정을 빼돌리는데 군주가 깨닫지 못합니다. 이렇게 군주가 가려진다면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인용했다.[1]

3. 여담[편집]

  • 출전은 관중의 말을 빌어서 국정을 농단하는 군주의 측근들을 "사직단에 숨은 쥐社鼠"라고 가리켰다. 사직단은 임금이 토지신 사와 곡식의 신 직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으로서 쥐가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 퇴치하려해도 제단이 파손될 것이 우려되어 결국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상황에 비유했다.[2] 훗날 군주의 비호를 받으며 권력을 행사하는 간신을 가리키는 사자성어 【城狐社鼠(성호사서)】로 다듬어졌다.
  • 출전은 관중의 말을 빌어서 "국정을 농단하는 군주의 측근들의 권력을 알기에 신하들은 침묵하고, 법으로 다스리려 해도 군주가 좋게 보지 않으므로 어쩌지를 못한다"고 인용했다.[3] 또한 같은 출전의 오두五蠹에는 옛날의 어진 임금과 인의를 말하는 이들은 법에 시비를 따져 나라를 문란하게 만드는 요인 중 첫 번째로 서술하고 있다.[4] 이를 통해 출전에서 언급한 선비가 갖춘 도리가 법가法家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출전에서 인용한 환공은 관중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패권국의 지위에 올렸다. 그러나 관중이 사망한 후 역아易牙와 수도豎刀 등을 총애하면서 이들의 전횡을 허용했다. 환공 사후 역아와 수도가 변란을 일으키면서 내전으로 번졌고, 송나라의 군사개입을 야기했다.[5][6]
[1] 韓非子 外儲說右上 「故桓公問管仲... 夫大臣爲猛狗而齕有道之士矣左右又爲社鼠而間主之情人主不覺如此主焉得無壅國焉得無亡乎」[2] 앞의 출전 「君亦見夫爲社者乎樹木而塗之鼠穿其間堀穴託其中燻之則恐焚木灌之則恐塗阤此社鼠之所以不得也」[3] 앞의 출전 「内間主之情以告外外内爲重諸臣百吏以爲富吏不誅則亂法誅之則君不安據而有之...」[4] 韓非子 五蠹 「是故亂國之俗其學者則稱先王之道以籍仁義盛容服而飾辯說以疑當世之法而貳人主之心」[5] 史記 卷三十二 齊太公世家 第二 「四十三年... 冬十月乙亥齊桓公卒易牙入與豎刀因內寵殺群吏而立公子無詭為君太子昭奔宋」[6] 앞의 출전 「孝公元年三月宋襄公率諸侯兵送齊太子昭而伐齊齊人恐殺其君無詭齊人將立太子昭四公子之徒攻太子太子走宋宋遂與齊人四公子戰五月宋敗齊四公子師而立太子昭是為齊孝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