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r37 vs r38
......
2929
또 사고 현장인 아파트 근처에 있는 日本スピンドル製造株式会社[* 정밀제조기기, 집진기, 에어샤워룸 등 제조하는 업체.]라는 회사 직원들이 소방관들의 구조활동에 도움을 줘서 이 회사 대표도 홍수포장을 받았다.
3030
3131
== 원인 ==
32
우선 사고 구간은 곡선반경 300m의 급곡선으로 본래에는 없었던 구간이지만 1997년 JR 도자이선의 개통과 함께 직결운행 및 JR고베선 아마가사키역과의 연계를 위해[* 즉, [[금정역]]과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부득이하게 이설되어 급곡선 구간이 만들어졌다.
32
우선 사고 구간은 곡선반경 300m의 급곡선으로 본래에는 없었던 구간이지만 1997년 [[JR 도자이선]]의 개통과 함께 직결운행 및 [[JR고베선]] [[아마가사키역(JR)|아마가사키역]]과의 연계를 위해 부득이하게 이설되어 급곡선 구간이 만들어졌다.
3333
3434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나왔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사고 구간의 한계속도는 106km/h인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에는 133km/h이 넘어가면 차량이 전복된다고 발표하였으나 이것은 승객이 아예 탑승하지 않은 빈 차일 때 기준이고 실제로 승객이 탑승한 경우는 이보다 훨씬 위험하다. 더군다나 입석까지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다. 결국 과속으로 인한 탈선 사고였다. 해당 구간의 ATS 장비가 구형이라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JR그룹 각 사는 제한속도 초과를 막을 수 있는 ATS-P나 ATC 같은 유형의 신호시스템을 차근차근 적용 중이었으나 당시 후쿠치야마선은 ATS-P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3535
3636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열차의 경량화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열차는 통상적으로 일정한 충돌강도를 갖추도록 되어 있고 물론 해당 207계 전동차는 그 조건을 만족했지만 전면 충돌강도에 비해 측면 충돌강도가 미흡하여 사고를 키웠다는 이야기다.
3737
38
이렇든 직접적인 원인은 기관 과실지만 이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과도한 경쟁'''과 '''[[JR 서일본]] 후진적인 사내화'''가 있다.
38
== 사건 이후 ==
39
[[JR 서일본]] 안전을 중요시하게 되었으며 안전에 관해 조금이라도 생길 수 있다 판단하면 그 즉시 운행을 중지하고 점검하기도 한다.
3940
40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고베(神戸)에서 각 한 글자씩 따 온 이른바 케이한신(京阪神) 지역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철도회사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주요한 도시 구간마다 어김없이 두세 개의 철도회사가 역 짓고 선로 깔아서 열차 돌리는 트랜스포트 타이쿤이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동네다.
41
42
이러한 경쟁은 물론 철도 서비스의 향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예컨대 [[JR 서일본]]은 고속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속달형 전철인 新快速은 통근용 전철인데도 최고속도가 130km/h며 표정속도도 '''85.2km/h'''에 달한다. 한국의 '''서울-춘천 [[경춘선]] [[ITX-청춘]] 표정속도에 맞먹는다.''' [[JR 서일본]]의 이런 고속화에 맞서 사철은 JR에 비해 더 저렴한 운임을 내세워 경쟁하고 있다. 철도 운행의 정시성도 칼같이 지켜져서 찬사를 받기도 했다.
43
44
그러나 JR 서일본이 받던 찬사의 이면에는 열차 운행시간을 초 단위로 점검하며 진행된 기관사들에 대한 압박이 있었고 이것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도 드러나면서 크게 비판받기 시작하였다. 당시 사고 기관사인 다카미 류지로(高見隆二郞)는 23세였던 젊은이로, 경력이 11개월밖에 되지 않는 초보였다. 비용을 절감[* 기관사도 경력이나 근속년수, 직급에 따른 임금 차이가 당연히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경력이 많은 즉 높은 호봉의 숙련된 기관사일수록 임금이 올라간다.]하기 위해 충분히 숙련되지 않은 초보 기관사를 현업에 배치하였고 그는 열차 조작에 미숙한 나머지 오버런을 범하고 열차를 지연시키고 말았다. JR 서일본은 이러한 경우 '일근교육(日勤教育)'을 부과하곤 했는데 그게 교육이라기보다는 군기훈련에 가까운 형태여서 기관사들은 대단한 부담감을 느꼈다고 한다. 일근교육을 받을 때는 근무조에서 제외되어 업무시간 내내 교육만 받는데 그 교육이라는 게 남들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리포트 쓰기, 사규 옮겨쓰기, 제초·청소[* 선로에 떨어진 비둘기 똥을 솔로 닦아내는 작업], 상사 면담[* 말이 좋아 면담이지 사실상 쌍욕과 폭언이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실상 징벌적 조치다. 이미 2000년에 일근교육 때문에 [[자살]]한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결국 지연된 열차를 회복하고자 무리한 운전을 하다가 참변을 불렀다.
45
46
뿐만 아니라 JR 서일본은 제대로 숙달되지 않은 사람을 통근시간대 기관사로 배치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을 받았다. 통근시간대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많이 몰리고 연착이 발생하면 많은 사람들이 지각하는 사고가 터지기 때문에 각 철도 회사에서 더욱 신경쓰는 시간대라 통근시간대의 열차 운전에는 충분히 숙련된 베테랑을 투입하며[* 이때 옆에서 보고 배우라고 초보 기관사를 동승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이것도 정말 피크일 때는 운전에 방해된다고 하지 않는다.] 신참 기관사는 사람이 적은 새벽이나 낮 시간대에 투입하거나 어느 시간대에 투입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고강도로 숙달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47
48
상황이 비슷했던 [[JR 동일본]]을 예로 들면 이를 잘 알고 이미 1990년대부터 안전관리와 기관사 및 차장 교육을 철저히 진행하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엔 보조기관사로 일하면서 주기관사 옆에서 보고 배우는 식으로 연수를 진행하고 승객이 많지 않은 낮 시간대에 운전실습을 시키고[* 연습시킬 때도 옆에 관리하는 보조 기관사를 1~2명씩 꼭 배치한다.] 운전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정기관사로 승진하지도 못하고 실습기관사로 계속 배치하도록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가하였다. 그러나 JR 서일본은 고작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고 승차인원이 많아 가장 신경써야 하는 출퇴근 시간대에도 경력이 안 되는 신참 기관사를 단독으로 운전대를 잡도록 투입하는 등 교육도 제대로 안 했다. 이 점이 밝혀지면서 JR 서일본은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49
50
또한 당시 JR 서일본은 속달성만을 고려해 여유시간이 없는 열차 시각표를 짜서, 만성적인 지연을 초래하고 그 지연을 회복하기 위해 기관사에게 과속을 조장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당시 JR 서일본은 아예 여유시간 없이 열차 시각표를 짜는 것을 경영방침으로 삼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2003년 12월에 후쿠치야마선 쾌속열차가 나카야마데라역에 추가정차하게 되었음에도 쾌속열차의 소요시간은 전혀 변함없었다. 이는 열차의 속도향상이나 가감속 개선 등으로 이룬 게 아니라 여유시간을 줄여서 달성한 것이었다.
5141
[[분류:탈선 사고]][[분류:JR 서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