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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21 | 그래서 [[로마 제국]]의 초기 정치 체제는 겉으로는 [[고대 로마인|시민]]의 대표인 [[프린켑스]](Princeps)가 다스리는 [[공화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주]]나 다름없는 권력을 갖고 세습까지 가능한 [[군주제|제정]]이라는 모순을 내포한 이른바 [[원수정]]([[프린키파투스|Principatus]]) 체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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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이러한 체제는 황제의 제위를 물려받을 자식이 없을 때 전임 황제의 혈통과 무관하지만 유능한 자가 제위를 합법적으로 계승하여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오현제]] 시대의 [[전성기]]를 가능하게 했지만, 역으로 누구나 힘만 있으면 제위에 도전하여 국가를 내전에 빠뜨릴 위험성 역시 내포하고 있었고 그게 극대화되어 제국의 쇠퇴를 불러온 시기가 바로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군인 황제 시대]]였다. | |
| 23 | 이러한 체제는 황제의 제위를 물려받을 자식이 없을 때 전임 황제의 혈통과 무관하지만 유능한 자가 제위를 합법적으로 계승하여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오현제]] 시대의 [[전성기]]를 가능하게 했지만, 역으로 누구나 힘만 있으면 제위에 도전하여 국가를 [[로마 내전|내전]]에 빠뜨릴 위험성 역시 내포하고 있었고 그게 극대화되어 제국의 쇠퇴를 불러온 시기가 바로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군인 황제 시대]]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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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3세기 말에 집권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은 바로 동방식 전제군주제의 요소를 도입하고 공화정 시대의 잔재를 대폭 약화시킨 [[도미나투스]](Domintus) 체제였고, 거기에 제국을 네 구역으로 나누고 선임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본인의 3명의 [[공치제|공동 황제]]와 함께 통치하는 [[사두정]]([[Tetrarchia]])을 가미했다. | |
| 25 | [[3세기]] 말에 집권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은 바로 동방식 전제군주제의 요소를 도입하고 공화정 시대의 잔재를 대폭 약화시킨 [[도미나투스]](Domintus) 체제였고, 거기에 제국을 네 구역으로 나누고 선임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본인의 3명의 [[공치제|공동 황제]]와 함께 통치하는 [[사두정]]([[Tetrarchia]])을 가미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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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7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은 그가 자진 퇴위한 후 혈연 관계가 없는 공동 황제들 간의 내전으로 인해 붕괴되었으나, 내전의 승자인 [[콘스탄티누스 1세]] 역시 도미나투스 체제를 통한 황제권 강화의 필요성은 인정했고, 그 과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비롯한 전임 황제들이 박해했던 [[기독교]]를 [[밀라노 칙령|공인]]하고 황제에게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교회를 황권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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