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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 76 | ==== 나폴레옹의 칭제와 19세기의 변화 ==== |
| 77 | 77 | 1804년 나폴레옹이 교황을 파리로 끌고 와서 [[프랑스인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유럽의 황제위 계승론에도 변화게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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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우선 신성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하는 별개의 가톨릭 제국을 다름아닌 교황이 대관식을 집전하여[* 단, 나폴레옹은 교황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제관을 머리에 썼다.] 인정함으로써 가톨릭 세계에는 하나의 제국만이 존재한다는 중세적 관념이 붕괴되었고, 신성 로마 황제위를 보유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마저 [[오스트리아 황제]] 칭호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 |
| 79 | 우선 [[신성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하는 별개의 가톨릭 제국을 다름아닌 교황이 대관식을 집전하여[* 단, 나폴레옹은 교황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제관을 머리에 썼다.] 인정함으로써 가톨릭 세계에는 하나의 제국만이 존재한다는 중세적 관념이 붕괴되었고, 신성 로마 황제위를 보유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마저 [[오스트리아 황제]] 칭호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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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 물론 나폴레옹도 카롤루스 대제 - 위그 카페 - 나폴레옹으로 정통성이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워 억지로나마 로마 계승을 표방하긴 했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는 신성 로마 황제 | |
| 81 | 물론 나폴레옹도 카롤루스 대제 - 위그 카페 - 나폴레옹으로 정통성이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워 억지로나마 로마 계승을 표방하긴 했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는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2세 본인이었으니 [[로마 제국 계승론]]에 입각한 황제위 계승 논리가 완전히 부정된 건 아니었지만, 이전에 비하면 칭제에 필요한 명분과 대내외적 여건이 크게 완화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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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 83 | 그리고 1871년에 이르러선 로마 계승과 무관해보였던 개신교 국가 프로이센 왕국마저 신성 로마 제국을 계승한 독일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를 칭하며 이와 같은 칭제 릴레이에 동참했다. |
| 84 | 84 | ==== 다른 문화권을 이용한 편법 칭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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