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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0 vs r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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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형성된 제국이 바로 갈리아 속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갈리아 제국과 동방 속주들을 장악하며 형성된 팔미라 제국인데, 이들이 장기간 국체를 유지하는데 성공했으면 로마가 유일한 황제국이라는 관념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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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제국 모두 2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주도한 재정복 전쟁으로 무너지며 단명한 반란정권에 그치고 말았고, 이후 사두정 시대에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세워진 브리타니아 제국[* 갈리아계 로마인 군벌 카라우시우스가 건국했다.]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재정복됨으로써 로마 이외의 황제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관념이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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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와 이란 왕중왕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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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했던 다른 문화권의 황제국 가운데 로마와 직접적인 접점이 있었고, [[고대 로마인]]들이 상세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국가는 왕중왕(샤한샤) 칭호를 사용하던 이란계 제국(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였다.[* 중국 대륙이나 인도 아대륙의 황제국들은 제한적인 교류를 통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 있었고, 비교적 로마와 교류가 활발했던 악숨(에티오피아)는 아직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가 아닌 왕(느구스)를 칭하는 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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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와 이란 [[왕중왕]]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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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공존했던 다른 문화권의 황제국 가운데 로마와 직접적인 접점이 있었고, [[고대 로마인]]들이 상세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국가는 [[왕중왕]](샤한샤) 칭호를 사용하던 이란계 제국(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였다.[* 중국 대륙이나 인도 아대륙의 황제국들은 제한적인 교류를 통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 있었고, 비교적 로마와 교류가 활발했던 악숨(에티오피아)는 아직 왕중왕(느구서 너거스트)가 아닌 왕(느구스)를 칭하는 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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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제국은 로마와 파르티아가 처음 충돌한 기원전 1세기부터 사산조 페르시아가 이슬람 제국에 의해 멸망하는 기원후 7세기까지 700여년에 걸쳐 중근동 세계의 패권을 겨룬 숙명의 [[라이벌]]이었으나, 서로의 황제위에 대한 정통성을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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