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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23 | 1872년 [[메이지 유신]]을 시작하고 역법을 전통적인 음력에서 [[그레고리력]]으로 바꾸고 일세일원제(一世一元制), 즉 임금이 즉위하여 한 번 [[연호]]를 정하면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고 사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때 일본도 연호 대신 서력기원처럼 원년으로부터 계속 헤아리는 기년법을 사용하자며 황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은 어중간하였다. 연호를 폐지하지는 않으면서도 진무 천황 즉위기원을 채택했고, 또 언제부터 황기가 발효되는지도 정하지 않았다. 또한 가장 격식을 갖춘 공문서에는 황기과 연호를 병용하되, 약식 공문서나 사적인 문서에서는 연호만 쓴다는 방침을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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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일본서기]]에 따르면 진무 천황은 45세 되던 기원전 667년(갑인년)에 [[ | |
| 25 | [[일본서기]]에 따르면 진무 천황은 45세 되던 기원전 667년(갑인년)에 [[큐슈]]에서 동쪽으로 정벌에 나서서(진무동정) 나라를 세우고 52세 되던 기원전 660년(신유년) 설날 가시하라궁(橿原宮, 오늘날 [[가시하라 신궁]] 자리)에서 즉위하였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서기 연도에 660을 더하여 '진무 천황 즉위기원'을 정하고 1872년(메이지 5년, 진무 기원 2532년)부터 처음으로 공적으로 사용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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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7 | [[황기 2600년 봉축곡]]들은 황기로 2600년이 되는 서기 1940년을 기념하여 작곡했기 때문에 저런 제목이 붙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1945년 패전 이전까지 일본에서 그냥 기원(紀元)이라고 하면 바로 '황기'를 가리켰다. 당시 일본에서는 연호를 대부분 사용하되 교과서와 격식을 갖춘 공문서에서는 황기를 사용했으며[* 저런 서류들만큼 격식을 갖출 필요가 없는 문서는 연호만 사용하였다.] 또한 [[일본군]]에서도 무기의 제식명에 황기에서 따온 숫자를 붙이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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