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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당)(비교)

r8 vs r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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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통치 말기에 접어들면서 조정은 점차 균형을 잃기 시작하였다. 총애하던 양귀비와 그 일가가 권력을 행사하면서 궁정 내 정치는 혼탁해졌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절도사 안녹산이 755년에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안사의 난으로 불리며, [[당나라|당 제국]] 전역을 전란에 빠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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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현종은 촉 지방으로 피난하였고, 정국 안정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아들 [[이형]]에게 제위를 넘겼다. 이후 그는 태상황의 신분으로 장안으로 귀환하였지만 국정에는 개입하지 않고 여생을 보냈으며, 762년에 붕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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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현종은 촉 지방으로 피난하였고, 정국 안정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아들 [[숙종(당)|이형]]에게 제위를 넘겼다. 이후 그는 태상황의 신분으로 장안으로 귀환하였지만 국정에는 개입하지 않고 여생을 보냈으며, 762년에 붕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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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의 통치는 [[당나라|당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군주]]로서 높이 평가받는다. 그의 치세는 문화와 제도의 융성, 국력의 확장, 유교 정치의 정착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전범으로 인식되며, 동아시아 [[황제]] 통치의 이상형으로 간주된다. 말년의 실정과 그에 따른 정국 혼란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장기 재위 기간 동안 이룩한 성과는 [[당나라|당]] [[왕조]] 전체의 위상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는 태릉에 묻혀 후세로부터 제향을 받으며 기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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