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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비교)

r32 vs r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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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어적 친연관계가 단일한 민족 정체성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기에, 삼국은 끊임없이 군사적, 외교적인 충돌을 이어갔고, 신라에 의한 삼한일통 이후에도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건국하며 완전한 통일과 정체성의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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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라의 통치 체제가 흔들리던 9세기 말에는 옛 고구려 땅과 백제 땅에서 각각 해당 국가를 계승했음을 주장하며 독립을 획득한 세력인 후고구려([[태봉]])과 [[후백제]]가 나타났는데[* 후고구려의 초기 국호는 장수왕 이후의 고구려처럼 [[고려]]였다가 마진을 거쳐 태봉이 되었고, 후백제는 그냥 백제라 칭했다.], 이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하나의 민족 의식이 아닌 삼국 각자의 정체성이 강하게 남아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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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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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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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년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하면서 상당수의 발해 유민이 남하하고, 936년 [[고려]] 주도의 후삼국통일이 이루어졌으나, 이 당시에도 삼국의 독자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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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내려오지 않은 발해 유민들은 고려와 별개로 12세기까지 독자 정체성을 유지하며 부흥운동을 지속하다가 [[금나라]] 이후 [[여진족]] 및 한족에 동화되었고, 고려에서는 중앙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된 무신정권 치하에서 삼국 부흥을 내세운 반란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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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삼국의 독자 정체성이 고려라는 단일한 국가 정체성으로 융합된 것은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입이라는 초유의 국난을 경험한 이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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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부터 더이상 중앙정부에 대항하는 세력도 옛 삼국의 정체성을 내세우진 않았고, 삼국 이전의 공통 조상인 [[고조선]]이 재조명되면서 그 시조인 단군이 국조로서 숭상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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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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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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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고려를 멸한 [[이성계]]는 삼국 이전의 국호인 [[조선]]을 정식으로 부활시킴으로써, [[고구려]] 하나만을 계승한 게 아닌 삼국 이전 [[고조선]]의 역사까지 계승하는 통일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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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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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는 서구의 Nation 개념을 번역한 민족이라는 단어가 유입됨으로써, 단순히 조선이라는 국가에 속한 백성, 옛 삼한 땅의 백성을을 뜻하는 조선인, 한인에서 더 나아가 조선민족, 한민족이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외세의 침탈에 맞서면서 정치 사상으로서의 민족주의 역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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