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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16 | 이후 원삼국시대에 진국의 영역은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삼한이 형성되었는데, 여기서 한이라는 명칭이 곧 한민족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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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18 | 삼한 가운데 마한 땅에서는 초기에는 고조선 준왕 계열의 익산 건마국이 주도권을 잡았다가 천안 목지국을 거쳐, 고구려계[* 예맥 중에서도 맥족 계열이었다.] 주민들이 세운 [[백제]]가 주도권을 차지했으며, 진한은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사로국이 주도권을 잡아 [[신라]]로 통합되었다. |
| 19 | ===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 | |
| 19 | ===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 | |
| 20 | 20 | 4세기에 들어서 만주와 한반도 북부는 [[고구려]], 한반도 남부는 [[백제]]와 [[신라]]의 경쟁 구도가 정립되었고, [[부여]]와 [[가야]]처럼 비교적 오래 독립을 유지한 중소국가들 역시 늦어도 6세기에 들어서는 이들 삼국에 통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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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22 | 이 당시 삼국은 언어적인 친연관계가 상당했음이 당대의 여러 기록으로 교차검증이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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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24 | 그러나 언어적 친연관계가 단일한 민족 정체성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기에, 삼국은 끊임없이 군사적, 외교적인 충돌을 이어갔고, 신라에 의한 삼한일통 이후에도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건국하며 완전한 통일과 정체성의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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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그리고 신라의 통치 체제가 흔들리던 9세기 말에는 옛 고구려 땅과 백제 땅에서 각각 해당 국가를 계승했음을 주장하며 독립을 획득한 세력인 후고구려([[태봉]])과 [[후백제]] | |
| 26 | 그리고 신라의 통치 체제가 흔들리던 9세기 말에는 옛 고구려 땅과 백제 땅에서 각각 해당 국가를 계승했음을 주장하며 독립을 획득한 세력인 후고구려([[태봉]])과 [[후백제]]가 나타났는데[* 후고구려의 초기 국호는 장수왕 이후의 고구려처럼 [[고려]]였다가 마진을 거쳐 태봉이 되었고, 후백제는 그냥 백제라 칭했다.], 이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하나의 민족 의식이 아닌 삼국 각자의 정체성이 강하게 남아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 |
| 27 | 27 | === [[고려시대]] === |
| 28 | 28 | 926년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하면서 상당수의 발해 유민이 남하하고, 936년 [[고려]] 주도의 후삼국통일이 이루어졌으나, 이 당시에도 삼국의 독자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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