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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 | 191 |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셀주크 세력의 침입으로 제국의 통제력이 약화되었고, 1073년에는 프랑크 용병 루셀 드 바이외가 이 지역을 점령하여 일시적으로 통치하였다. 1075년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에 의해 다시 제국 통제하에 들어갔지만, 곧이어 셀주크 세력이 완전히 장악하였고, 이후 아르메니아콘 테마는 복구되지 않았다. 다만 해안 요새 일부는 콤네노스 황제들의 노력으로 다시 제국 영토로 편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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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 | === 카파도키아 테마 == | |
| 194 | 카파도키아 테마는 9세기 초부터 11세기까지 남부 카파도키아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초기에는 아나톨리콘 테마의 하위 군사 단위였으나, 아랍 세력의 반복된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국경 방어 지역인 클레이수라로 분리되었고, 830년경 독립된 테마로 승격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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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 | 카파도키아는 길리키아 협곡 북쪽에 위치하여 아랍의 주요 침공 경로에 놓였기 때문에 심각한 약탈과 황폐화를 겪었다. 티아나, 헤라클레이아, 파우스티노폴리스 등의 도시는 파괴되었고, 일부 주민들은 니그데와 룰론 등 요새지로 피신하였다. 테마 시기 이 지역은 약 20개 이상의 성채와 도시에 의해 요새화되었으며, 병력 4,000명이 주둔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국 원정군의 집결지 역할을 한 대규모 군사 주둔지인 콜로네이아, 카이사레이아, 바튀스 리악스 등의 아플렉톤이 존재하였으며, 테마의 전략관은 대개 프로토스파타리오스 계급을 지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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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 | 레온 6세 치세에는 동부 일부 지역이 카르시아논 테마로 이관되었고, 대신 북서쪽으로 확장되어 코마타 투르마가 신설되었다. 10세기 들어 아랍 세력의 위협은 쿠르쿠아스 장군 등의 정복 활동으로 줄어들었고, 이 지역은 아르메니아계와 시리아계 그리스도교도의 이주지로 변화하였다. 카파도키아는 동시에 포카스 가문과 말레이노스 가문 같은 유력 군사 귀족들의 기반지가 되었으며, 이들의 성장과 반란은 중앙 정부에 위협이 되었다. 바실리오스 2세는 이들의 영지를 몰수하며 권력을 억제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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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 | 11세기에는 아르메니아인의 대규모 이주가 계속되었고, 1050년경부터 셀주크 튀르크의 침입이 시작되어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대부분의 지역이 상실되었다. 1081년에도 ‘카파도키아와 코마의 토파르케스’ 직함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서부 일부 지역에서 동로마의 통제가 일부 유지되었거나 단지 관직명이 형식적으로 존속했을 가능성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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