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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에 접어들며 테마 제도의 행정적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지만, 트라키시온 테마는 끝까지 명목상 존속하였고, 다른 해체된 테마들의 영역을 흡수하며 기록에 계속 등장하였다. 1337년 니코미디아가 함락되면서 보통 그 시점을 제국의 마지막 아시아 영토 상실로 보나, 트라키시온 테마의 필라델피아는 본국과의 연결이 끊긴 채로 약 50년간 독립적으로 존속하여, 이를 제국의 최후 아시아 영토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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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비레오톤 테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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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비레오톤 테마는 동로마 제국이 소아시아 남부 해안 일대에 설치한 해군 중심의 군사 행정 구역으로, 테마 제도 초기부터 제국의 해상 방어를 전담하던 전략적 테마였다. 그 명칭은 테마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던 키비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병력 및 주민들은 키비레오테로 불렸다. 제국 초창기부터 육상 방어를 담당한 다른 테마들과 달리, 키비레오톤은 오직 제해권 확보를 목적으로 창설된 해군 테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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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테마는 카리아와 리키아, 팜필리아 해안 일대와 도데카니사 제도를 포함하였으며, 중심지는 현재 터키 남서부 해안에 해당한다. 수도는 남부 연안의 항구 도시인 아탈리아였으며, 이 밖에도 키비라, 미라, 밀라사, 코스, 로도스 등 항만 및 요새 도시들이 테마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도시들은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항로의 주요 지점으로 기능하였으며, 해군 작전과 해상 통제를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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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키비레오톤은 별도의 테마가 아니라 제국 해군 함대를 지칭하는 카라비시아니라는 조직에서 출발하였다. 이 함대는 크레타를 포함하여 제국 남부 전역의 해상 방어를 담당하였으나, 727년 레온 3세의 성상 파괴령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이후 조직이 재편되었고, 크레타는 독립된 행정 단위로 분리되었다. 그 결과 남은 본토 해안과 주변 도서들을 중심으로 키비레오톤 테마가 정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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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해적과 해상 이슬람 세력의 빈번한 습격은 테마의 도시들을 반복적으로 약탈 대상으로 삼았으며, 이로 인해 인구 감소와 경제적 손실이 심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은 동시에 키비레오톤 테마의 전략적 중요성을 부각시켰고, 테마는 수세기 동안 제국의 제해권을 지키는 전진 기지로 기능하였다. 9세기 초반에는 70척 이상의 군선을 보유하며 해군력의 중심지로 성장하였고, 제국의 크레타 원정과 시칠리아 방면 작전에도 병력이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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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1세기에 접어들며 아랍 세력의 해상 활동이 약화되고 해적의 위협이 감소하자, 제국은 해군력의 유지에 있어 우선순위를 낮추게 되었고, 이에 따라 키비레오톤 테마 역시 쇠퇴하였다. 특히 제국 내부의 정치적 혼란과 재정 축소가 해군력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으며, 테마의 전투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셀주크 튀르크 세력이 소아시아에 침입하면서 테마의 대부분 지역은 상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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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1세기 말부터 12세기 초에 걸쳐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와 요안니스 2세 콤니노스가 일부 해안 지역을 회복하고 테마 체제를 복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재건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마침내 마누일 1세 콤니노스 치세 중인 1150년에 이르러 키비레오톤 테마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며, 남은 행정 구역은 밀라사-멜라누디온 테마에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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