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22 vs r23 | ||
|---|---|---|
| ... | ... | |
| 78 | 78 | === 이코마 터널 === |
| 79 | 79 | 이코마 고개는 난공사로 유명한 구간이어서 이 부분을 넘기 위해 인클라인이 계획되기도 했고 [[아타미시|아타미]]의 [[고텐바선]]처럼 아예 이코마 산을 빙 돌아서 가는 안도 고려되었으나 결국 터널밖엔 답이 없어 터널 공사가 강행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조선인 노무자들이 숱하게 죽어나갔다. 특히 '''1913년 낙반사고가 일어나자 공사 주체인 오바야시구미는 매몰된 인부 152명을 구조하지 않고 그대로 매몰시켜버리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 때문에 당시 일제의 만행 사례로 가끔 한국 언론이나 인터넷에 등장한다.[[https://brunch.co.kr/@vhfptmxm55/101|#참고]] |
| 80 | 80 | |
| 81 | 그런데 사실 이 당시는 내지(일본인) 노동자들도 파리 목숨 취급받던 미친 시대였기 때문에[* 비슷한 사례가 홋카이도나 가라후토(사할린) 등의 개척 역사에서 많이 등장한다. 사실 일본에서 노동자가 그나마 사람취급 받게된것은 1950년대 이후의 일로 1913년 시점에서 일반직장에서 연공서열과 평생직장이 보장된다는 개념이 없어서 이직이 일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는 당대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노동자들은 2020년대에 비하면 권리가 매우 없긴 했었다. 일본만 그랬던 건 아니라는 거다.] 일본 우익들은 "한국이 억지를 쓴다"라며 역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코마 터널 괴담에서 등장하는 많은 사고들은 대부분 개통 직후인 다이쇼 시대(1912~1926)가 아니라 2차대전 일본 패망 직후([[일본국유철도 3대 미스터리 사건|국철 3대 괴담]] 시기와 겹친다.)에 대부분 일어나기도 했다.[* 이는 건축에서도 비슷했다. 일제 강점기 석굴암이나 미륵사 등지에서 문화재 훼손을 위해 콘크리트를 썼다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은데, 이 당시 일본은 오사카 성, 나고야 성 등 자신들의 문화재에도 콘크리트를 아낌없이 썼다. --물론 그게 잘했다는 건 아니고--] | |
| 81 | 그런데 사실 이 당시는 내지(일본인) 노동자들도 파리 목숨 취급받던 미친 시대였기 때문에[* 비슷한 사례가 홋카이도나 가라후토(사할린) 등의 개척 역사에서 많이 등장한다. 사실 일본에서 노동자가 그나마 사람취급 받게 된것은 1950년대 이후의 일로 1913년 시점에서 일반직장에서 연공서열과 평생직장이 보장된다는 개념이 없어서 이직이 일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는 당대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노동자들은 2020년대에 비하면 권리가 매우 없긴 했었다. 일본만 그랬던 건 아니라는 거다.] 일본 우익들은 "한국이 억지를 쓴다"라며 역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코마 터널 괴담에서 등장하는 많은 사고들은 대부분 개통 직후인 다이쇼 시대(1912~1926)가 아니라 2차대전 일본 패망 직후([[일본국유철도 3대 미스터리 사건|국철 3대 괴담]] 시기와 겹친다.)에 대부분 일어나기도 했다.[* 이는 건축에서도 비슷했다. 일제 강점기 석굴암이나 미륵사 등지에서 문화재 훼손을 위해 콘크리트를 썼다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은데, 이 당시 일본은 오사카 성, 나고야 성 등 자신들의 문화재에도 콘크리트를 아낌없이 썼다. --물론 그게 잘했다는 건 아니고--] | |
| 82 | 82 | |
| 83 | 83 | 물론 '''그렇다고 노동자 목숨을 쓰고 버리는 취급한 게 절대 합리화는 될 수 없다.''' "러일전쟁이야기" 등을 집필한 온건 우익 미야다이 신지 교수 같은 사람들조차도 "전쟁 전 다이쇼 쇼와 연간이 근대 국가라고? 웃기는 얘기지"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발언은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애니메이션) 작중에서 핫토리 전무의 입을 통해 그대로 인용된다.] |
| 84 | 84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