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r14 vs r15
......
470470
쿨리지의 서거 당시 백악관의 근위병 중 한 명은 "그는 너무나 조용해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였지만, 그가 없으니 비로소 백악관이 텅 빈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존재감은 요란한 목소리가 아닌, 묵직한 원칙의 무게에서 나오고 있었던 셈이다.
471471
472472
== 평가 ==
473
쿨리지에 대한 평가는 미국사에서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 중 하나다. 그는 누군가에게는 '번영을 일궈낸 위대한 자유주의자'로, 다른 이에게는 '대공황의 단초를 제공한 무책임한 방관자'로 기억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그가 20세기 미국 정치사에서 '작은 정부'와 '재정 건전성'이라는 가치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474
475
쿨리지는 단순히 게으른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는 '대통령이 일을 안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능동적 소극주의자'였다. 그는 연방 정부가 개인의 삶에 개입할수록 인간의 창의성과 책임감이 결여된다고 보았다.
476
477
그의 이러한 태도는 현대 미국의 [[리버터리어니즘]]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권한을 대통령이 행사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으며, 이는 [[시어도어 루스벨트]]나 [[우드로 윌슨]] 같은 '제왕적 대통령' 모델에 대한 정면 거부였다.
478
479
결론적으로 쿨리지는 '시대를 가장 잘 읽었던 통치자' 혹은 '시대를 너무 믿었던 통치자'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그는 미국이 제국주의적 팽창보다는 내실을 기하고, 정부보다는 시민의 에너지를 믿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480
481
그가 남긴 경제적 호황이 대공황이라는 파국으로 끝났다는 점은 그의 커리어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되기도 하지만, 그가 집권했던 6년간 미국인들이 누렸던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안정은 미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는 말이 아닌 결과로 보여주려 했고, 그 결과가 너무나도 거대했기에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경제학자와 정치인들이 그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473482
=== 정치적 평가 ===
474483
쿨리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수동적인' 대통령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정치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능동적으로 정부의 비대화를 저지한' 인물이다. 그의 정치적 유산은 단순히 1920년대의 호황에 그치지 않고, 훗날 [[신자유주의]]와 현대 [[미국 공화당(1854년)]]의 핵심 가치인 '작은 정부'와 '개인의 책임'이라는 도그마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4754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