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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9 | 379 | 훗날 [[대공황]]이 닥쳤을 때, 국민들을 보호할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전무했다는 점은 쿨리지 자유방임주의의 뼈아픈 실책으로 꼽힌다.[* 쿨리지 지지자들은 "대공황은 쿨리지 때문이 아니라 후임자 [[허버트 후버]]의 정책 실패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며 오늘날까지도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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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1 | === 1928년 불출마 선언 === | |
| 381 | ==== 1928년 불출마 선언 ==== | |
| 382 | 382 |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하면서도, 쿨리지라는 인물의 성격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사건이다. 1927년 여름,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현직 대통령이 던진 이 짧은 메모는 미국 전역을 패닉에 빠뜨렸으며, 동시에 '권력의 유혹' 앞에서 가장 쿨하게 돌아선 지도자의 뒷모습을 상징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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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4 | 384 | 1927년 8월 2일, 쿨리지는 사우스다코타주의 래피드 시티(Rapid City)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당연히 쿨리지가 1928년 대선에 출마하여 재선(사실상 3선[* 1923년 하딩의 잔여 임기를 승계했으므로, 1924년 당선 이후 한 번 더 출마하는 것이 헌법상 가능했다.])에 도전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시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이었고, 쿨리지의 지지율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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