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7 vs r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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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1 | ||<-2><tablewidth=450><tablealign=right><table bgcolor=#ffffff,#1f2023><table bordercolor=#808080><bgcolor=#808080> {{{#ffffff {{{+1 '''1989년 천안문 개혁 항쟁'''}}}[br] (六四事件) [br] 1989 Tiananmen Square Protests}}} || |
| 3 | 2 | ||<-2><bgcolor=#808080> {{{#ffffff '''기간'''}}} || |
| 4 | 3 | ||<-2> [[1989년]] [[4월 15일]] ~ [[6월 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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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0 | 289 | * [[자오쯔양]] |
| 291 | 290 | 6월 4일 강경 진압을 실시하기 직전 실각했으며 죽을 때까지 사실상 가택 연금 상태가 되었다. |
| 292 | 291 | * [[친지웨이]] |
| 293 | [[국방장관|국방부장]]이었다.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덩샤오핑의 진압명령이 내려오자, 공식적인 당의 1인자인 [[자오쯔양]]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는 핑계를 들어 계속 시간을 끌었다고 한다.[[http://www.smh.com.au/world/how-top-generals-refused-to-march-on-tiananmen-square-20100603-x7f0.html|#]] 결국 거듭되는 압력에 명령을 수행했으나, 결과적으로 덩샤오핑의 노여움을 사서 국방부장의 일반적인 임기인 10년(5+5)을 못 채우고 5년 단임으로 내려왔다.[* 다만 [[자오쯔양]]이나 [[쉬친셴]]처럼 군, 정계에서 완전히 | |
| 292 | [[국방장관|국방부장]]이었다.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덩샤오핑의 진압명령이 내려오자, 공식적인 당의 1인자인 [[자오쯔양]]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는 핑계를 들어 계속 시간을 끌었다고 한다.[[http://www.smh.com.au/world/how-top-generals-refused-to-march-on-tiananmen-square-20100603-x7f0.html|#]] 결국 거듭되는 압력에 명령을 수행했으나, 결과적으로 덩샤오핑의 노여움을 사서 국방부장의 일반적인 임기인 10년(5+5)을 못 채우고 5년 단임으로 내려왔다.[* 다만 [[자오쯔양]]이나 [[쉬친셴]]처럼 군, 정계에서 완전히 쫓겨나지 않았으며 이후 전국인민대표대회 부회장을 역임해 나름대로 대우는 받았다. 그의 자식들도 [[인민해방군]] 장교를 역임하고 있는데 그 중 장남이자 동부전구 부사령원 육군 사령원을 지낸 친웨이장 중장은 [[흑사회]]를 박살낸 것으로 유명하다.[[https://einhal.tistory.com/m/entry/중국군-VS-흑사회|#]]] | |
| 294 | 293 | * [[장아이핑]](전 해군사령원), [[예페이]](전 해군사령원), 양더즈(전 총참모장), 샤오커(전 군정대학 교장), [[쑹스룬]](전 군사과학원장), 리쥐쿠이(전 총정치위원), 천짜이다오(전 우한군구 사령관) |
| 295 | 294 | 모두 상장(上將)으로 [[국공내전]]부터 활약한 군 원로였다. 이들은 군통수권을 쥐고 있는 당중앙군사위원회에 공동 명의의 편지를 보내서 군 투입을 반대했다. 다만 강경 대응을 반대했다기보다는 [[덩샤오핑]]이 자신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계엄을 결정한 것에 대한 항의였으며 실질적으로 군 투입을 반대했는지는 불투명하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장아이핑을 비롯한 7명의 원로 상장이 계엄령 및 군 투입을 반대했다는 사실은 여러 소스에서 확인되고 있다.[* [[https://cn.nytimes.com/china/20190603/pla-daily-reporter-1989-lhasa-to-beijing/|뉴욕 타임스 중국어판 2019년 6월 3일자 기사에 잘 나와 있다.]](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 기자 장림(江林)의 증언이다.) 나와 전총참모부 훈련처장 장성(张胜)은 장아이핑의 전기를 쓰기 위해 그를 방문했다. 장아이핑은 7명의 상장이 나서기 전에 중앙군사위원회에 단독으로 보고를 했다고 말했다. 그때는 아직 계엄이 내려지지 않았는데, 그(장아이핑)는 이 상장들을 이끌고 광장에 가서 학생들과 대화한 후, 중앙군사위원회에 학생들과 대립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장아이핑은 "우리(중국공산당 초기지도자들)도 소싯적에 학생운동을 했는데, 왜 그들(학생)들과 대화하지 않고 적으로 삼느냐. 이들이 단식해서 병든 모습을 봤는데 왜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
| 296 | 295 | * [[쉬친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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