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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 1 공화정은 여러 의미에서 시대착오적이었는데, 그 일부분으로 [[이탈리아 반도]]지역에 대한 재정복 시도가 있었다. 로마 노바 공화국 정부는 로마의 옛 역사를 들어 '이탈리아 반도는 로마 노바 공화국의 정당한 영토이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유지를 이어 공화국은 이탈리아 반도를 되찾고 로마 시를 당연히 로마 국가의 영토로 해야 한다'라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심지어는, 공화주의를 주창한 로마 공화국이 로마 황제를 들먹이는 것도 말이다.)을 펼쳤고, 이에 대대적으로 군비를 일으켜 이탈리아 반도를 침공했으나, 비록 로마 노바 공화국이 대대적으로 군비를 투자하여 전력상으로는 이탈리아 측보다 우위에 있기는 하였으나, 당시 이탈리아 또한 [[리소르지멘토]]를 통하여 이탈리아라는 국민 의식이 점차 형성되어 갔고 비록 이탈리아가 한때 로마 제국의 영역이었을 지언정 로마 제국과는 갈라진지 천 년도 지났는데 그 시대의 명분을 들이밀면서 통합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쉽사리 항복할리 없을 점이었다는 점, 그 이외에 [[집단창작:가상지구 베타/미테란트 코뮌|레스카티에 왕국]]등의 이탈리아 지원군 등의 가세로 인하여 로마 노바 공화국의 이탈리아 '수복전쟁'은 좌절되었다. 로마 노바 공화국은 이로 인해 국제적 위신이 크게 실추되었으며 국민들의 불만은 더더욱 거세졌다. 특히 이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에 대한 보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서 수많은 상이군인들이 빈민이 되어 거리를 떠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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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불만이 누적되어 결국 1893년 공화국령 [[테살로니키]]에서 현재의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으며, 훗날의 역사는 이 사건을 ''두 번째 혁명'''으로 평가한다. 첫 번째 혁명은 군주제라는 체제에 대한 반기와, 공화제라는 형식의 수립이었다면, 두 번째 혁명은 '''로마 민중들의 혁명'''이었다. 첫 번째 혁명은 현학적인 자유주의자들의 혁명이었다면, 두 번째 혁명은 민중들의 자기 권리 주장, 빈곤에 대한 저항, 이탈리아 전쟁으로 양산된 상이군인들의 실존적인 투쟁 등이 집합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또한 '로마'의 주류였던 '로마인 남성'에서 벗어나서, 여성들, 뒤바뀐 역사에서 피지배 소수자들이 된 투르크인들 등이 대대적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요구하면서 혁명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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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불만이 누적되어 결국 1893년 공화국령 [[테살로니키]]에서 현재의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으며, 훗날의 역사는 이 사건을 '''두 번째 혁명'''으로 평가한다. 첫 번째 혁명은 군주제라는 체제에 대한 반기와, 공화제라는 형식의 수립이었다면, 두 번째 혁명은 '''로마 민중들의 혁명'''이었다. 첫 번째 혁명은 현학적인 자유주의자들의 혁명이었다면, 두 번째 혁명은 민중들의 자기 권리 주장, 빈곤에 대한 저항, 이탈리아 전쟁으로 양산된 상이군인들의 실존적인 투쟁 등이 집합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또한 '로마'의 주류였던 '로마인 남성'에서 벗어나서, 여성들, 뒤바뀐 역사에서 피지배 소수자들이 된 투르크인들 등이 대대적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요구하면서 혁명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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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혁명으로 인하여 제 1 공화정 정부가 총사퇴하고 엉겁결에 집권한 과도정부는 '두 번째 혁명'을 일으킨 민중 세력들과 전면적으로 타협,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로마 노바 공화국은 '''제 2 공화정'''으로 진입하게 된다.[* 한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헌법 개정을 토대로 제 n 공화정의 표기가 달라지지만, 로마 노바 공화국은 세부적으로 헌법이 개정된 일은 많았으나 첫 번째 콘스탄티누폴리스 혁명으로 설립된 정부를 '제 1 공화정'으로, 테살로니키의 두 번째 혁명으로 설립된 체제를 '제 2 공화정'으로 일컫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로마 노바 공화국 제 2 공화정 체제인 것으로 스스로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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